지도로 애민정신 실천한 실학자 ‘김정호’

한 가지에 온전히 빠져 평생을 오롯이 바치는 이들을 보면 경탄스럽다. 우리가 그들을 보며 늘 감동받는 것은 그 길이 그 어떤 현실적 장애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켜야 하는 힘들고도 처절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강한 의지를 지닌 역사의 수많은 위인이 있지만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살아낸 대표적인 인물이라면 ‘대동여지도’라는 거대한 업적을 이룬 고산자 김정호를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정확한 생년의 추정은 힘드나 김정호가 교우한 지인들과 남겨진 기록들을 볼 때 대략 육십 평생을 살아왔다고 추측한다(일반적으로 1866년에 사망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최한기의 <청구도제>에 따르면 ‘벗 김정호는 스무 살 안팎부터 지도와 지리지에 깊이 뜻을 두고 오랫동안 찾아 열람하여 여러 방법의 장단점을 자세히 살폈다’라고 기술하고 있고, 1834년 무렵 <청구도> 2책과 최한기와 공동 작업한 <지구전후도>가 출판된 것으로 미루어 사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김정호는 오롯이 백성을 위한 지도 제작이라는 고독한 외길만 걸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투지로서 하루, 한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음을 현존하는 수많은 지도는 말해주고 있다. 과학 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현재에도 한 장의 지도 제작 과정은 오랜 시간과 세밀한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자동화된 체계 없이 그 옛날 수작업으로 현대의 지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네 책의 ‘청구도’, 열여덟 첩의 ‘대동여지도’ 필사본, 스물세 첩의 ‘동여도’, 스물두 첩의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제작하였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업적이다.

 

김정호가 강렬한 투지로 수십 년 동안 지도 제작에 몸담은 것은 단순히 지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닌 이유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애민으로 가득한 실학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지도 제작 과정들과 평생 교우한 벗들을 보면 어떤 굳은 신념과 철학을 지니며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루었는지 알 수 있다.

고산자 김정호가 평생을 두고 교우한 이들은 평생의 벗으로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조선 후기 대표적인 철학자인 최한기, 중인으로서 시사 활동을 활발히 한 최성환,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실학자 이덕무의 손자이자 부국통상을 지향한 오주거사 이규경과 같은 존경받는 실학자들이다. 또한 김정호에 대한 공책 한 바닥 정도

의 짧은 기록 또한 그들에 의해 아직 전해져올 수 있었다. 생활에 이롭게 쓰여 삶을 풍요롭게 하는 실천적인 학문 실학의 취지에 부합하듯, 그의 지도 제작 과정을 살펴보면 전문가적인 안목보다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 그들의 관점에서 수십 번 수백 번 살피고 배려했음을 알 수 있어 더욱 숙연해진다.

또한, 김정호는 매우 학구적인 실학자임과 동시에 각수(刻手) 출신의 지도제작자임을 그가 남긴 목판본에서 추정할 수 있다. 즉, 지도 제작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목판본 지도를 제대로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된 각자(刻字) 기술을 지닌 각수임을 보여 준다. 이는 일부 역사학계의 가설이기도 하고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의 전문가라고 하실 수 있는 이기봉 교수님의 견해이기도 하다. 그가 제작한 목판본을 자세히 살펴보면 실제 각자할 때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구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제대로 된 각자 기술을 지닌 각수만이 감지할 수 있는 안목이며, 그 섬세하게 각자된 목판본을 보고 있으면 제대로 교육을 받은 숙련된 각수 출신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요즘 수많은 콘텐츠에서 역사 속 위인들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재발견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잘못된 일제 식민 사관이 날조한 그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지금, 이제는 단순히 위대한 지도제작자가 아니라 시대적 흐름에 부응하여 백성을 사랑한 실학자 김정호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의 업적에 원동력이 되었던 철학과 학문관에 대한 많은 관심과 연구가 뒷받침된다면 역사 속에서 고산자 김정호는 더 큰 가르침을 주는 거목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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