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인해 한국 경제가 침체되고 있다는 우려가 한국은행에서 나왔다. 고령화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구고령화는 소비를 감소시키고 금리를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래 살 것에 대비해 저축을 늘리기 때문에 소비는 줄고 돈의 가치는 낮아지는 현상이다. 추측으로만 설명되던 저소비·저금리, 즉 고령화로 인한 부작용 가운데 하나인 디플레이션 현상을 한국은행이 실증적 연구로 입증했다. 실제로 고령화가 경제를 위축시킨다는 것.

특히, 80대 이상 고령의 부모가 60대 이상 자녀에게 상속하는 이른바 ‘노노상속’이 일반화되면 디플레이션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고령화로 인한 경제위축이 우리나라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는 심각한 경고가 나온 셈이다.

브레이크 없는 고령화

지난해 우리나라 주민등록 인구가 관련 통계를 발표한 이래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이면서 제자리걸음을 한 가운데 고령화 추세는 더욱 더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주민등록 인구는 모두 5184만9861명으로 집계됐다. 평균연령은 42.6세로 상승추세를 이어갔고, 65세 이상 고령 인구수가 처음으로 800만명을 돌파했다. 14세 이하 유소년 인구와 15∼65세 생산가능인구는 줄면서 고령 인구와 유소년 인구수 격차는 156만명으로 벌어졌다.

주민등록인구는 2018년보다 0.05%(2만3천802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주민등록인구는 출생·사망과 같은 자연적 요인이나 국적취득·상실, 재등록·말소 등에 따라 변하는데 지난해에는 인구수에 거의 변동이 없었다. 지난해 주민등록인구 증가율과 증가 인원 모두 정부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공표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최저치에 해당한다.

격차 벌어지는 유소년-고령자 갭

저출산과 고령화의 여파로 유소년과 고령자의 갭은 더 크게 벌어졌다. 우선, 평균연령은 42.6세로 주민등록인구 통계가 공표되기 시작한 2008년 이래 가장 높았다. 주민등록인구 평균연령은 2008년 37.0세에서 꾸준히 높아져 2014년(40.0세)에 40세에 달했고, 2018년(42.1세)에는 42세 선을 넘었다.

연령계층별로 보면 생산가능인구인 15∼64세가 2018년보다 19만967명 감소했고, 0∼14세 유소년인구도 16만1738명이 줄었다.

이에 반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37만6507명 증가하면서 처음으로 800만명을 넘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802만6915명)와 14세 이하 유소년인구(646만6872명)의 격차는 156만명으로 2018년(102만명)보다 더 크게 벌어졌다. 지역별로는 시·도 중에서 서울, 부산, 대구, 전북, 대전, 전남 등 12곳의 인구가 감소했다. 인구가 늘어난 곳은 경기, 세종, 제주, 인천, 충북 등 5곳에 불과했다.

금리도 떨어뜨리는 고령화

이 같은 인구고령화로 인해 지난 20여년 동안 실질금리가 3%포인트 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최근(13일) 발간한 ‘인구 고령화가 실질금리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는 20∼64세 대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995년 9.6%에서 2015년 19.4%로 확대되면서 실질금리를 1995년부터 2018년까지 23년간 3%포인트 떨어뜨렸다고 분석했다.

실질금리란 명목금리에서 소비자물가상승률을 뺀 실제 금리 값으로, 경제 주체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금리 수준을 말한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인구 고령화로 은퇴 이후 생존 기간이 늘어나 저축이 늘고 소비는 감소한 결과”라면서, “고령화 효과가 한국의 실질금리 하락을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저축률이 높아지면 금리는 낮아지는 데다, 저출산에 청년 인구가 줄면 경제의 기초체력인 잠재성장률도 낮아져 금리도 떨어지게 된다. 기대수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 경제주체들이 즉각적으로 저축을 늘리려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앞으로 인구 고령화가 지속되면 실질금리가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질금리 하락, 돈의 가치도 떨어뜨려

실질금리란 실제로 내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금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은행에 100원을 예금하고, 1년 뒤 110원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100원을 예금하고 10원의 이자를 받았으니, 우리가 명목상 받은 금리는 10%가 된다.

하지만 1년 동안 물가가 5% 뛰었다면 명목금리(10%)에서 물가상승률(5%)를 제외하고 우리 주머니에 실제로 떨어지는 금리는 5%가 된다. 100원을 예금하고, 105원을 받게 된다.

만약 1년 동안 물가가 10% 뛰었다면, 명목금리 10%를 물가상승률(10%)가 상쇄하기 때문에 우리 주머니에 실제로 떨어지는 금리는 0%가 된다. 100원을 예금해도 원금 100원만 받게 된다. 그런데,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명목금리가 10%인데, 물가 상승률이 11%라면 실제로 우리가 받는 금리는 –1%가 된다. 100원 예금했다가 99원 밖에 못 받는 경우다.

이처럼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를 기록한다면 은행예금을 포기해야 한다. 쉽게 말해, 금에 투자하든지, 주식투자에 투자해야 한다. 실질금리가 하락하면 금값이 뛰고, 주가가 뛰는 현상이 자주 목격되는 이유다. 은행으로 들어가지 않고 남는 돈이 많아지면 금리는 계속 낮은 수준을 유지하게 되고, 투자율과 잠재성장률도 낮아진다. 실질금리 하락이 국가 경제에 나쁜 신호란 의미다.

‘일본 잃어버린 10년’, 고령화 영향 교훈

고령화가 국가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점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고령화가 소비 감소와 저금리를 부른다는 건 상식이다. 저물가·저성장의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진 일본이 좋은 예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최고 호황기를 넘어서고, 1990년대 초반 거품이 꺼지면서 급속한 고령화 여파로 수요가 줄고 경기침체와 물가 하락이 오래 이어진 디플레이션을 겪었다. 이른바 ‘잃어버린 20년’이다.

60세에 은퇴해도 20년 넘게 더 살아야 하는 게 평균적인 한국인의 모습이 됐다. 하지만 사회안전망은 구멍이 숭숭 뚫렸고, 자연히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다. 저축이 늘고 소비가 줄면 돈의 값어치(금리)는 떨어지게 돼 있다. 이번 한국은행 보고서는 이 같은 상식을 이론적으로 입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고령화의 부작용은 한국 경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노노(老老) 상속’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자식에게 자산을 물려주는 피상속인의 절반 이상(51.4%)이 80세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상속재산이 고령층 안에만 머물면서 소비저하와 함께 치매로 인한 자산관리 문제를 일으킨다. 실제로 일본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오는 2030년이면 일본의 치매질환자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이 전체 가계 금융자산의 10%를 넘어설 것이란 보도도 있었다.

세제혜택 등 고령자 지갑 열 방책 필요

가뜩이나 한국 경제는 저물가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0.4%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는 통계청이 지난 1965년 관련 통계를 잡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우리나라도 저출산·고령화에서 비롯된 저금리·저물가·저성장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깰 방책을 찾아야 한다는 우려가 높다.

고령화로 인한 경기침체 극복 방안도 선험자인 일본에서 배울 수 있다. 일본 정부는 고령자가 재산을 미리 상속하면 세제 혜택을 준다. 예컨대 조부모가 손자의 교육비를 증여하면 세금을 깎아준다. 결혼·육아자금을 미리 증여해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도 선제적으로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최상책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지만 현실은 거꾸로 간다.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좀 더 실질적이고 긴박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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