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 갑질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경비원이 근무 중 취재에 응하고 있다. 사진=국정브리핑

최근 젊은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다 5월 10일 세상을 떠난 경비노동자 고(故) 최희석(59)씨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한국사회는 목숨을 내걸고 일해야 하는, 어렵고 힘든 일을 외주업체에 맡기면서 ‘죽음의 외주화’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고령의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설움에 더해 나이가 많다는 또 하나의 사회적 핸디캡을 갖고 힘겨운 버티기를 하고 있다.

고령자들이 일하는 직종 대부분이 숨진 최희석씨처럼 사회적으로 천시되는 경비원이나 청소부 등 단순노무직에 몰려 있는 데다, 고령이라는 또 다른 약점이 더해지면서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서비스 대상의 분풀이 대상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고령노동자를 보호하는 강력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소한’ 주차 시비로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됐다

고(故) 최희석씨 사건의 발달은 지난 4월, 아파트 경비원이었던 최씨가 이중주차 돼 있던 심모(49)씨의 차량을 밀어서 이동시킨 것을 계기로 시비가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씨는 그때부터 경비원 최씨에게 온갖 폭언과 폭행, 협박을 일삼았고, 심지어 최씨를 ‘머슴’으로 부르는 등 갑질행위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특히, 심씨가 경비원 최씨를 경비실 내부 화장실에 가둬놓고 폭행, 최씨의 코뼈가 내려앉는 등 전치 3주의 피해를 입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경비원 최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5월 10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심씨는 구속돼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은 한 입주민이 인터넷 게시판에 사건을 알리고, 최씨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이 등록되면서 갑질 사건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씨의 빈소에 정세균 국무총리가 다녀갔고, 주요 정치인들이 조의를 밝히는가 하면, ‘저희 아파트 경비아저씨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으로 5월 11일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5월 31일 오후 기준 43만여명이 참여한 상태다.

임시계약직노인장, 아파트 경비원들의 수난이 끊이지 않는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다 목숨을 끊은 고(故) 최희석 사건을 남다른 감정으로 지켜본 이가 있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며 겪은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조정진(63) 작가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故) 최희석씨의 죽음을 접하고 엉엉 울었다고 밝혔다.

조정진 작가가 경비원 경험으로 펴낸 택의 제목은 ‘임계장 이야기’다. 임계장이란 아파트 경비원들 사이에서 ‘임시계약직 노인장’을 줄여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조정진 작가는 ‘임계장’의 다른 말로 ‘고다자’라는 단어도 있다고 말했다. ‘고르기도 쉽고, 다루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다’는 의미다.

조정진 작가는 주민 갑질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 최희석씨를 두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약자인 경비원에게 사회적·법적 안전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조 작가는 “‘결백을 밝혀달라’는 최희석씨의 유서 내용을 사회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폭력배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갑질에 대해 무관심하고 관용적인 사회적 태도가 문제라 지적이다.

공공주택관리법에는 갑질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갑질을 해도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에 훈시규정에 불과한 유명무실한 법이다.

비정규직 고령근로자, 노동권 사각지대 방치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과 진보정당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고 최희식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추모모임)은 5월 12일 오전 사건이 발생한 우이동 아파트에서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경비노동자의 죽음은 개인의 비관이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고 밝혔다.

추모모임은 “2014년 11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의 경비 노동자가 입주민 갑질에 스스로 분신해 목숨을 끊은 지 6년이 지났다만 대낮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막말과 갑질, 폭력 끝에 경비원이 또다시 숨졌다. 강남과 강북에서 6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고령의 경비노동자는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성도 받지 못한 채 일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이들은 인간으로서 대우받기를 포기한 채 일한다”며 “이번 사건을 이 시대 취약계층 감정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시작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신하나 변호사는 “한 개인이나 아파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주변 어디서나 이런 현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단순히 폭력 사건으로 치부하지 말고, 경비노동자의 근로조건이 어땠는지 반성하고 노동권 사각지대에 관해 관심 가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비정규 고령노동자, 앵그리사회서 억압받는 일부 주민의 표적이다

인터넷에서 ‘우이동 아파트 경비원 갑질 사망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고(故) 최희석씨 사건은 입주민과 경비원 사이의 단순한 감정대립이나 갑질에 의한 사건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고질적인 갑질문화에 더해 사회적 약자에게 화를 푸는 ‘앵그리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례는 지난 2014년 10월, 입주민의 폭언과 모욕적 행동을 견디지 못하고 분신 사망한 서울 압구정 모 아파트 경비원 사건도 있다. 이외에도 아파트 경비원들이 겪는 반인권적·불법적 피해 사례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경비원들의 피해 사례에서 가해자들이 내뱉은 말을 보면 고령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직업을 무시하는 말은 애교에 불과하고, 인격모독성 발언도 흔하다.

2018년 동국대학교의 한 남성 교수가 여학생 기숙사에 무단침입했가 제지하는 경비원에게 “넌 개 값도 안 돼서 안 때려”라고 했다. 2018년 경기 화성의 한 아파트에서는 차단기를 빨리 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주민(49)이 70대 경비원에게 “개가 주인한테 짖는다”는 입에 담지 못할 모욕을 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기저에는 ‘앵그리(Angry) 사회’가 우리의 현실을 지적한다. 돈이나 지위로 억압된 화를 풀어야 하는데 이를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 채, 그 울분을 사회적 약자에게 상처를 입히고 인권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분출한다는 분석이다.

경비원 보호대책? 진정한 해법은 일자리 질을 높여야 한다

시민단체들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경비노동자 관련 조항을 신설·보완해 입주민이 경비노동자에게 폭언이나 폭행하면 실형이나 벌금형과 같이 강하게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의 대응도 강력해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고용노동부, 경찰청, 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에 근본적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지자체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관할 지역에서 사건이 불거진 서울 강북구는 고 최희석씨 사건을 계기로 ‘인권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종합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핵심이 공동주택 경비원의 근무환경 실태조사 진행과 공동주택 관리조례 개정 등 제도 정비다.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 가운데 사용자 범위를 입주민까지로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근로자 인권침해 발생 시 관리소장의 보호조치 및 관할 감독 관청에 신고할 것을 의무화하는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 등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밖에 다른 지자체들도 ‘경비원 인권조례’ 제정을 밝혔다.

이와 함께, 왜 그동안 피해당사자들이 강하게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 감시단속적 근로자에 포함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문제, 대부분 외주용역업체에 소속돼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청소원의 고용불안정, 그리고 이런 약점을 파고들며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배설하는 몰지각한 행태. 고 최희석씨가 던진 무거운 화두가 현재진행형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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