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쉐어링은, 2014년 서울시가 대학 주변에 사는 홀몸 노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사업입니다. 대학생에게 저렴한 임차료를 받고, 노인들의 고립감을 줄이려는 의도입니다. 홀몸 노인은 대학생에게 여유 주거공간을, 대학생은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거 공유를 합니다. 생활 서비스로는 말벗, 장보기 돕기, 가전제품 · 스마트 기계 작동 등이 있습니다. 영화 ‘룸 쉐어링’은 홀몸 노인 금분과 대학생 지웅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6월 22일 개봉한 영화 ‘룸 쉐어링‘은 상업영화로는 빛을 보지 못했다. 하루에 한두 번 상영하는 영화관을 찾아야 했고, 대부분 심야시간에 상영해 아쉬웠다. 그러나 영화는 소외계층의 삶과 사랑,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전반적으로 잔잔한 영화, 특별히 악한 캐릭터도 없다. 어쩌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영화였지만, 훈훈한 마음을 선사한다.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고아‘라는 딱지의 소유자 지웅과, 돌이키려야 돌이킬 수 없는 삶을 산 독거노인 금분. 그들은 같은 공간에 살기로 한다. 말 그대로 룸 쉐어링이다. 고학생은 경비를 줄이고, 독거노인은 적은 돈을 받고 공간을 내주는 구조다. 공동생활을 해야 하니 서로가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어 노인은 덜 외롭다. 그러나 금분은 평생을 혼자 살아온 독거노인이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고, 그 시절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파독 간호사의 삶을 살았다. 유부남인 줄 모르고 사랑을 했고, 버림받은 깊은 상처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누굴 믿겠는가. 혼자 클래식을 들으며 책을 보고, 사람들과의 소통은 거절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금분은 색색의 테이프로 구역표시를 한다. 바닥은 금새 몬드리안의 추상화처럼 나뉜다. 이어서 고학생 지웅이 들어오고 금분은 지웅에게 허용되는 공간을 설명한다. 화장실은 사용하되 대변은 안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지웅은 까탈스럽고 강한 할머니의 주문에 바짝 긴장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학비를 벌어야 하고,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니 이쯤은 견딜 수 있다. 두 사람의 룸 쉐어링은 그렇게 시작된다.
지웅은 여유시간이 생기면 아르바이트를 한다. 고독사를 당한 사람의 집을 치우는 일부터 팻시터까지. 공부가 제일 쉬워 공부를 택했다는 지웅은 공부를 잘하면 고아원 원장님이 예뻐해 주시더라고 말한다. 지독한 외로움이다. 지웅의 꿈은 자신의 공간에서 팻시터의 일을 하는 것인데 갈 길이 멀다.
금분에게는 나름의 자존감을 세우는 것이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방법은 누군가를 위해 일하는 것. 폐지를 주워 모은 돈으로 후원을 하고, 급식소에서 밥을 배급 받아 배고픈 아이들에게 먹인다. 또 통증으로 시달리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대신해 약을 타서 전달한다. 모두가 자신보다 약한 자를 위한 일이다. 그들은 고마워하며 금분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금분은 활력을 얻는다.
그러나 지웅에게는 인색하다.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한다는 지웅에게 밥을 주고는 밥값을 요구한다. 한 푼이라도 남겨 후원할 요량이지, 지웅을 위한 일은 결코 아니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남을 도우면 자신이 더 기쁘다고. 그래서 자신을 위해 돕는 일에 나선다고 한다. 금분도 마찬가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꺼이 곁을 내어 주는 사람이라면, 지웅에게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려 타인을 위해 그토록 애쓰는 모습은 아닐는지. 스스로가 소외되는 걸 인정하기 싫어 그런 모순된 삶을 살 수도 있겠다.
팻시터 아르바이트를 하는 지웅은 강아지를 돌보며 온갖 정성을 다한다. 가족을 위한 일이 이런 느낌일까.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사람들과 교류하지만 어느 순간 또 혼자다.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보며 지웅은 말한다.
‘누구에게는 일상인데 나에게는 아킬레스건이야. 고독사의 끝은 나이 많고 적은 것과는 상관 없어. 고독사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그럴 거라고 생각할까?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 곁에 있다면 조금은 덜 외롭고 두렵지 않을까?’
독거노인과 고아를 일직선상에 놓고 고독을 말하는 지웅의 말,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는 대목이다. 룸 쉐어링의 의미다.
금분의 유일한 친구 점례는 또 어떤가? 평범하게 살아온 점례 또한 룸 쉐어링을 한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자식들은 모두 출가해 혼자다. 함께 사는 대학생과 일상을 공유하지만 가족에게 소외된 고독감은 채울 수가 없다. 틈만 나면 낡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외로움을 달랜다. 몸이 아파 연락하면 구급차를 대신 보내는 자식이지만, 나무라지 않는다. 자식이니까. 속을 훤히 알고 있는 금분과 점례는 아픈 곳을 건드리지 않는다. 존중하며 서로를 살핀다. 모두가 소외된 사람들이다.
그랬던 금분과 지웅이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서서히 마음을 열어 간다. 지우개만 없어져도 고아인 자신을 의심했다던 지웅은 늘 순종적이고 참는 데 익숙하다. 그런 모습에 금분은 ‘할 말은 하고 살라‘ 말하고, 지웅은 사랑 때문에 모든 걸 잃어도 사랑하는 게 낫다고 금분을 위로한다. 어느새 금분은 지웅이 돌아오는 시간을 기다리게 된다. 금분과 지웅은 자신들의 상처를 꺼내기 시작한다. 소통을 거부하던 금분이 지웅을 통해 세상 구경을 하며 즐거워한다.
아픈 점례가 세상을 떠나자, 자식들이 남겨 놓은 돈을 찾으러 혈안이 된다. 그 모습에 금분은 망연자실한다. 엄마가 애지중지 꺼내 보던 사진첩만은 간직해야 되지 않냐며 끌어안는데 그 속에서 돈이 나온다. 점례가 그 사진만큼은 간직할 거라 생각해 넣어 둔 것. 돈만 챙기는 자식들을 보며 혼잣말을 한다.
‘자식보다 차라리 남이 나은 세상이야.’
장면이 바뀌고 화면에 ‘룸 쉐어링 가족 1호 탄생‘이라 적힌 현수막 아래 금분과 지웅이 앉아있다. 둘이 진짜 가족이 된 것이다. 금분은 살아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며 기뻐한다. 화장실도 공유하고 지웅을 위해 자립 저금통장도 만들어 준다.
금분은 여전히 폐지를 줍고, 아픈 이들을 찾고, 급식 배급을 타다 전달한다. 그런 금분에게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독거노인 등 사회적 관계가 제한된 노인들은 우울감이나 고립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노인 고립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도입하고, 사회적 관계망을 넓힐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한다. 특히, 젊은 세대들과 노인들이 서로 상호 교차하고 만난다면 노인들은 고립감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말이라도 한 번, 눈인사라도 한 번 할 수 있는 그런 환경 구성으로 ‘룸 쉐어링‘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