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브시니어 탐방③] 박애란, 나의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바로 지금

미국 여류작가 조앤 디디온(Joan Didion)은 “우리는 살기 위해 이야길 한다”고 말했다. 이는 우리의 삶을 이야기나 서사로 이해한다는 뜻이다. 일, 사랑, 갈등, 이 모든 것이 인생사의 서로 다른 지점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생존을 최종 목표로 하기 때문에 자기 이야기로 자기 서사를 만들어 라는 것이다. 최근, 싱싱한 재료와 맛난 양념을 첨가해서 자신만의 서사를 세상의 좌판에 올려놓은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바로 인생의 전반전은 학교 선생님으로, 후반은 액티브 시니어, 패션모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애란 씨다.

그와의 인연은 2019년 1월 ‘사랑하나 그리움 둘’이란 책의 출간 기념회에서 시작되었다. “사랑하나 그리움 둘”은 푸른 이상을 가진 서울대 농대생들의 이야기다. 학교를 직접 짓고 책걸상을 만들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순결한 등불이 되고자 땀과, 눈물 그리고 헌신의 결정체로 설립한 야학(서둔 야학)에서 공부하며 푸른 꿈을 키웠던 사춘기 소녀의 내밀한 이야기를 60 중반의 나이에 가슴으로 그린 수필집이었다.

단순한 개인의 싸구려 과거 회상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온 청춘의 기록이요 뜨거운 삶의 서사였다. 육십 년 동안 가슴에 품어온 사춘기 소녀의 러브스토리와 한 개인의 치열한 성장 분투, 그리고 주경야독의 외로움과 서글픔이 진솔하게 책 속에 잘 녹아있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비록 시대 변화로 그 활활 타오르던 고결한 이상의 불길은 꺼졌지만 그곳에서 공부하며 꿈을 키우고 생채기 많은 인생을 살아온 박애란 선생님의 기록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박애란 씨가 쓴 ‘사랑 하나 그리움 둘’

그녀의 굴곡진 인생 은 소위 말하는 영화 같은 삶이었다.

주경야독의 결실이 학교 선생님으로 잉태되어 30여 년간 봉직하다 은퇴한 지금은 액티브 시니어 중에서도 가장 활기찬 인생 2막의 삶을 살고 있다. 마지막 직장인 평택여고에서 은퇴하자마자 ‘평택은 내 놀이터로는 너무 좁아 서울로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취미 활동을 하며 신나게 살아보자’며 오랫동안 터 잡았던 평택을 떠나 서울로 둥지를 옮겼다. 그 이유가 그녀의 진정한 오팔(Old People with Active Lives) 라이프를 대변해 주고 있다.

그의 첫 도전은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낡아서 못 입게 된 옷, 코듀로이(골덴) 바지의 성한 부분만 오려서 손바느질로 막내 동생 스커트를 만들어 줄 정도로 어려서부터 바느질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은퇴하자 마자 본격적인 패션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2,30대 젊은이들과 함께 시작한 공부는 녹록지 않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기초도 부족하고 이해력도 떨어져 진도를 따라잡기가 버거웠지다. 하지만 내가 만들고 싶은 옷을 꼭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드로잉을 하고 패턴을 만들고 묵묵히 바느질하며 중급까지 과정을 마친 후 서울시가 주관하는 창업스쿨에서 패션 창업자 과정까지 이수했다.

눈도 침침한 나이에 왜 바느질 공부를 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옷차림이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옷차림은 그 사람의 취향, 가치관 그리고 철학이 묻어 있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다. 혹자는 “여성들에게 옷은 아름다운 날개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확실한 수단 중의 하나”라며 패션에 중요성에 대해 언급을 했다. 그녀도 “이왕에 입는 것, 보다 예쁘고 세련되게 입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입을 때 편안하고, 아름답고 세련되고 가격도 착한 옷을 만들고 싶은 동기가 패션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패션 콘셉트는 레트로 로코코. 그런 풍의 옷을 만들고 싶어 색감과 질감 그리고 실루엣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박애란&더 맵시’가 창업할 미래의 패션 회사 상호다.

박애란 씨의 드로잉 작품들.

두번째 도전은 춤추는 것이다.

발레 학원에 등록해 발레부터 시작했다. 굳은 뼈가 말을 듣지 않아 한 동작 한 동작 따라 하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딸보다도 어린 선생님은 열심히 동작을 가르쳐 주었지만 만만하게 배울 동작이 아니었다. 춤 동작이 사뿐사뿐해야 하는데 민망스럽게도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쿵쿵 둔탁한 소리를 내곤 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내 돈 갖다 바치면서 웬 생고생을 하나”라며 투덜대기도 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다 보면 너무 행복해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그 힘든 과정을 넘어 요즘은 제법 춤꾼다운 솜씨를 뽐낼 정도는 된다고 은근히 자랑스러워 한다. 발레를 배우는 틈틈이 왈츠와 탱고도 배웠다. 가장 좋아하는 춤은 ‘우아한 파도타기’로, 왈츠는 A코스, B코스, C코스가 있다. 하지만 독보적인 몸치라 10년째 A코스만 무한 반복하고 있다. 그렇멩도 파트너와 춤추는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박애란 씨는 패션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8년에는 수필가로 등단했다.

안네 프랑크는 “행복한 사람의 일기장은 비어 있다”고 했다. 다양한 삶의 편린과 도전으로 자신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어 가는 그다. 평탄치 않은 삶이 가장 큰 무기이고 굴곡 있는 삶이 다양한 콘텐츠로 존재해 “내 삶의 우물은 퍼내고 또 퍼내도 계속 물이 고여 있고 산전수전 다 겪은 내 일기장은 차고 넘친다”고 말한다. 그것이 창작의 원천이라고 이야기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도 많아 언제 글쓰기를 멈출지 모르겠다”며 다양한 필력을 정열적으로 뽐내고 있다.

최근 그녀는 모델 교육도 받아 우아하고 당당한 자태를 런웨이에서 뽐내며 시니어 패션모델로 활동 중이다. 다양한 방송에도 출연하며 취미 생활과 활기찬 시니어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공중파방송에 출연해 액티브 시니어 삶에 대한 전도사가 됐다.

그는 “하루를 살아도 재미있게 살자”고 한다. 앞으로 인생 3막을 어떻게 펼쳐 나갈지 참으로 많은 기대가 된다. 노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며 분초를 쪼개어 배우고 즐기고 있는 그의 삶이 진정한 오팔(Old People with Active Lives) 라이프의 전형이 아닐까.

은퇴 후 집에서는 구박받는 ‘삼식이’로, 넘치는 시간을 감당 못해 산으로 열심히 발 도장 찍으러 다니거나, 습자지 지식의 달콤함에 맛 들여 풀 방 구리에 쥐 드나들 듯 이 교육장 저 교육장 부평초처럼 유영하며 긴 하루를 보내는 시니어들에게, 박애란 씨의 모습은 인생 2막을 어떻게 살 것인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어제나 내일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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