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옹이 내 인생

쏟아지는 빗속에 베이비붐세대(babyboom generation) 58개띠 여성분 끝순(가명)이가 찾아왔다. 징회관도(澄懷觀道) 상담실로 발을 들이며 ‘햄릿’에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를 흥얼거리며 한숨을 토했다. ‘끝순’이름은 아이 낳기 끝을 바란 이름인데 동생이 한 명이 더 있어 2남5녀란다. 고향은 전남 고흥, 농어업을 겸한 마을이란다. 가정형편상 고등학교 진학 못한 끝순이는 매일 바다에서 조개, 청각 등 해조류를 캐서 팔았다.

그러기엔 꿈 많은 소녀, 끝순이는 바다너머 저 멀리 어딘가로, 그리던 나날에 어느 날 부산언니 집으로 가출했다. 눈치 빠른 언니는 가출을 직감하고 친정아버지한테 연락했다. 아버지는 어디라도 취업을 좀 시켜주라며 얼마의 돈을 끝순이 몰래 보냈다. 밥 얻어먹기가 미안한 끝순은 청소 빨래 등 가정부 역할 중 여유시간에 주변장터 구경에서 미장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순간 미장원에 취업해야겠다고 먹은 마음으로 쏘다닌 몇 날에 미장원곁꾼으로 취업했다.

쉬는 날 끝순이는 미장원장님보다 기술 ‘곤조’가 더 심한 바로 위 선배언니를 중국집에 모셨다. 언니는 기숙사제공에 공납금은 일반 고등학교 반인 미용기술고등학교 졸업을 자랑하며 그 학교 입학을 권했다. 미용기술고등학교 입학한 끝순이는 토·일요일에는 다니던 미장원 곁꾼알바로 고학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끝순이는 인형머리 만지기로 거의 하루를 보냈다. 초등 2학년 때는 연탄집개로 친구 머리 파마해주다가 친 사고로 어머니한테 죽도록 매를 맞았다.

그것들이 바탕인지 다른 학생보다 미용기술은 일취월장해 각 미장원마다 알바러브콜을 받았다. 졸업과 동시에 선생님 추천으로 부산시내에서 유명한 예식장 웨딩숍에 취업했다. 취업 3개월 정도부터 아무리 못난 신부라도 끝순이 손을 거치면 신랑이 못 알아볼 정도로 천하미녀로 바뀌었다. 월급에 팁까지 돈을 몇 년간 끌어모을 때 아버지 암 진단, 아버지 병원치료를 쉽게 받도록 병원 앞에 끝순이 돈 반, 나머지는 친정집 돈으로 집을 사 주었다. 직장까지 그 도시로 옮겨 끝순이 지극한 3개월 정도 효도보람도 없이 아버지는 영면하셨다.

다시 부산으로 직장을 옮겨 전국은 물론 외국까지 신부화장미용사로 뽑혀 다녔다. 당시 9급 공무원 월급 10여만 원이고 짜장면 한 그릇 350원일 때다. 월 수익은 서울강남 은마아파트 34평형 평당 68만원을 능가했다. 돈을 잘 번다는 소문에 너도나도 중매로 어떤 날은 선을 몇 건이나 볼 때도 있었다. 의사 판검사 변호사 신랑감을 맞이할 열쇠 3개 준비가 된 끝순한테 그에 버금가는 검찰공무원시험 합격한 신랑감 중매가 들어왔다.

해운대 조선비취호텔에서 처음 선을 봤다. 일본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시어머니 될 사람과 같이 나온 중매쟁이는 검찰공무원 시험합격으로 발령을 기다린다는 신랑을 소개했다. 신부는 세계를 주름잡는 헤어디자이너라고 소개해 주었다. 중매쟁이와 시어머니 될 사람은 차를 마시고는 곧 자리를 떴다. 둘이 된 청춘남녀, 많은 선을 보아도 두근거리지 않던 끝순이 가슴은 방망이질했다. 선을 본 후부터 탤런트보다 더 미남 박남철(가명)과 하루가 멀다 데이트했다.

가난했던 고흥처녀와 부잣집 아들, 노는 물이 달랐다. 박남철이가 정하는 만남장소는 호텔커피숍에서부터 출발해 고급만 찾아다닌 데이트였다. 9급 공무원 반달 치 월급정도일 때도 많았던 데이트비용은 거의 끝순이가 부담해도 즐겁기만 했다. 그렇게 3개월 정도 데이트로 끝순이는 열쇠 3개로 시아버지 정치바람에 폐족이 된 집으로 시집갔다. 검찰공무원합격은 거짓이라고 고백한 남편은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착하기만 한 끝순이, 가져간 돈으로 남편 사업 뒷바라지를 했다.

남편은 사업 확장이다, 첨단기계 도입 등 제목으로 끝순이 통장잔고는 야금야금 줄어만 갔다. 그러기를 몇 년이 지나 두 아이 어미가 된 끝순이가 생활비를 달라는 말에 버럭 화를 낸 남편은 집을 나갔다. 몇 달 만에 돌아온 남편이지만 잔소리 일원하지 않고 맞았다. 그 후부터 툭하면 집나가는 것이 남편 무기였다. 그럴 때마다 “남편을 어떻게 하니 집을 나가나” 꾸짖던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시집간 그 날부터 영면하실 때까지 모셨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남편 빚 독촉에 시달린 끝순이가 작심하고 사업에 대해 따졌다. 그 말에 끝순이 앞으로 빚만 잔뜩 남긴 채 남편은 1톤 짐차에 짐을 싣고 집을 나갔다. 그때 40대 끝순이가 환‧진갑이 지나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빚 청산에 빈털터리 끝순은 중학생인 첫 딸, 초딩인 둘째 아들과 달 셋방으로 이사했다. 결혼생활동안 손을 놓은 웨딩 샵은 못하고, 무엇을 해서 두 아이를? 노래방을 찾아 프로급인 노래실력으로 찢어진 가슴을 꿰맸다.

그런 어느 날, 노래방주인이 급매로 노래방 맡으라는 권유에 응했다. 친절과 서비스로 끝순이 노래방 번창으로 서울 명동격인 부산서면까지 진출했다. 그런대로 잘나가던 사업이 코로나19로 원폭을 맞았다. 원폭 잔해에서 건진 돈으로 성년이 된 아들딸 아파트 한 채씩 사주었다. “엄마가 너희들에게 주는 첫 선물이자 마지막 선물이다.” 이 어미 끝순이, ‘내 첫 남자이자 마지막 남자인 내 남편이 돌아오면 받아주겠다’는 말에 아들딸은 적극 반대다.

치매걸린 친정어머니를 모신 6개월, 친정피붙이라면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갈가리 찢긴 끝순이 아픈 가슴, 훤히 아는 친정식구 누구도 전화한통 없다며 쏟는 눈물, “내 가슴에 빈 술잔 가득 채워 줄 그 누구를 찾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로 갈까?” 영화대사 같은 말을 남기고 간다온다 말없이 어둠으로 사라진 여인! 밤비보다 더 진하게 흐르는 여인의 눈물소리가 중놈 가슴에 쓸어져 넘어진다. 저 여인 앞날에 웃음 가득한 나날을, 나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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