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어르신들이 안마의자 점검 및 시연을 하고 있다

[시니어신문=김지선 기자] 한국의 대표적인 노인복지시설인 경로당이 노년세대에게 외면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인구추계 상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돌파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지만 경로당을 찾는 노인은 오히려 급격히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줄어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경로당이 노인복지시설로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경로당에서 시행할 프로그램이 마땅찮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시설로서 과거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어르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외면 받는다는 지적이다.

또한, 경로당을 이용하는 어르신들이 대체로 80세 이상 후기고령노인으로 채워지면서 60~70대는 아예 경로당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갖게 된다는 이유도 있다. 경로당을 이용하면 진짜 노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1969년부터 대한노인회가 관리주체

경로당은 어르신들이 모여 여가를 선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노인여가복지시설’이다.

경로당의 기원은 과거 전통사회에서 양반계급이 즐겨 찾던 누각이나 서민들이 이용하던 정자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집집마다 손님을 맞기 위해 마련했던 사랑방 문화도 경로당의 기원으로 인정된다.

자생적인 사랑방 문화는 1960~70년대 산업화시대에 들어서면서 나타난 노인복지 욕구에 따라 마을마다 ‘노인정’이란 이름으로 급격히 보급된다. 특히, 1969년, 전국 노인정 회장들이 중심이 돼 사단법인 대한노인회를 설립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한노인회가 경로당의 관리주체가 됐다.

초창기 경로당은 바둑이나 장기를 두거나 화투놀이와 같은 여가생활을 즐기던 장소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노인복지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 증가하면서 다양한 여가문화프로그램을 도입하게 된다. 2007년 노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단순히 ‘노인들이 모이는 정자’란 뜻을 가진 ‘노인정’이란 명칭 대신, 어르신들을 존경하고 공간적 의미도 확대하자는 차원에서 ‘경로당’이란 이름을 쓰고 있다.

현행 주택법은 일반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의 경우 150세대 이상이면 경로당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경로당 이용자 10명 중 8명은 80세 이상

1990년 당시 노인 2명 중 1명이 이용하던 경로당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용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92년 ‘노인정 이용실태’란 주제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990년 기준 노인정에 등록된 노인회원을 바탕으로 이용자 수는 전체적으로 100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집계됐다. 65세 이상 전체 노인인구(341만5000명)의 45%가 노인정을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인정 1곳당 약 50여명의 노인들이 등록돼 있었다.

하지만 2017년 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노인실태조사에서 경로당 이용률은 전국 평균 19.2%에 불과했다. 지역으로 나눠볼 때 읍면지역은 40.1%였지만, 도시지역의 동 지역은 10.3%로 떨어졌다. 즉, 도시지역 노인은 10명 중 1명만 경로당을 이용하는 셈이다.

이용자 연령도 80세 이상이 약 80%(79.4%)를 차지해, 주로 80대 이상 후기고령노인들이 경로당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 경로당 여가프로그램 만족치 않아 불만

경로당 이용자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현 노년세대인 7080세대는 물론, 예비노년층인 5060 베이붐세대들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연구조사결과로 입증하지 않더라도 50~60대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경로당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미래 이용자를 유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경로당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경로당을 이용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불만도 상당하다.

실제로, 지난 2016년 대한노인회가 전국 경로당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로당 활성화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들도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전국 경로당 10곳 중 6곳(62.2%)에 달하는 약 4만개(3만9866개) 경로당 회원들은 ‘현재 경로당의 여가 프로그램’에 대해 불만족스럽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경로당 이용자들이 지적하는 불만은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못하다(22.8%)’는 점이 가장 많았다. 이어 ‘정기적인 프로그램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21.2%)’거나 ‘관심 없는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다(16.5%)’는 불만 순이었다.

개방형 경로당, 주민과 함께 새로운 해법 모색

경로당 이용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이용자들의 불만도 늘어나면서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는 개방형 경로당을 지향하는 ‘작은 복지센터형 경로당’을 도입하면서 하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서울시의 개방형 경로당은 광주광역시 등으로 확대되면서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로당은 원칙적으로 65세 이상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지만 여름엔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경로당에 한해선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무더위쉼터를 거의 이용하지 않아 효과는 미비했다.

서울시가 2015년부터 전 자치구에 개방형 경로당을 도입했다. 2015년 128곳이었던 개방형 경로당은 지난해 602곳까지 늘어났다. 세부적으로 ‘카페‧동아리형, 돌봄형, 학습형, 도서관형, 소득형, 영화 관람형’ 등 6가지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작은복지센터형 경로당은 300㎡ 이상 규모 대형경로당 가운데 앞의 6개 유형 중 2가지 이상의 복합적 기능과 문화 프로그램을 갖춘 형태로 운영된다. 서울에서 60여곳이 운영되고 있다.

서울 개방형 경로당, 주민 위한 여가문화 프로그램

작은복지센터형 경로당은 노인회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일례로, 서울 종로구의 평창경로당은 다이어트댄스, 탁구교실, 요가 등의 수업이 이뤄진다. 창신경로당은 건강체조, 한국어교실 수업도 진행한다. 교남경로당은 장구와 민요, 우리 춤 등 주민 건강과 취미 활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곳 프로그램들은 주민들의 호응이 높아 참여 인원만 300명에 달한다.

또 다른 개방형 경로당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미용실도 운영한다. 지하 1층에는 어르신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머리를 손질할 수 있다. 경로당 회원은 50%, 주민은 30% 할인을 받는다. 재능기부 형태로 자원봉사자들이 머리 손질을 담당한다. 인근 지역 미용실과 상생하기 위해서 저소득층이나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 목적으로만 운영된다.

광주 소통경로당, 마을주민 초청 ‘나눔밥상’

광주광역시도 동구와 서구를 중심으로 개방형 경로당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광주 동구는 ‘소통경로당’이란 이름으로 개방형 경로당을 본격적으로 운영한다.

동구는 2018년 12월부터 충장동 삼성경로당을 소통경로당으로 시범운영했다. 2층 공간을 활용, 월·수·금요일 오후 2~3시간 그림‧색칠‧짐볼난타‧치매예방교육‧라인댄스 등의 프로그램을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로 운영했다.

주민뿐만 아니라 노인회원들에게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자 올해 3월 개방 의사를 갖고 있는 경로당 4곳을 추가로 선정했다. 동구는 개방을 희망하는 경로당에 대해 연차적으로 운영을 확대하고 있다.

소통경로당에서는 매월 1회 이웃경로당 어르신이나 마을주민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는 ‘나눔밥상’이 운영된다. 인근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경로당을 방문해 종이공예, 전래놀이, 푸드아트 등을 어르신들과 함께 체험하는 ‘손자랑 오손도손 세대공감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이와 함께 웃음치료, 생활안전교육, 영화상영 등 전 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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