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단순 질병 탓 아니다. 통합적 접근 필요”

[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노인 건강관리와 진료에 있어서 개인마다 갖고 있는 다양한 특성을 무시한 채 개별 질환만 중시하는 인식과 제도가 문제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람마다 생애주기에 맞춘 종합적인 건강정보를 제시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개별 질환 전문가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한 사람의 노화를 총체적으로 보지 않고 개별 질병만 중시하는 정책도 개선과제로 꼽혔다. 대표적으로 ‘치매국가책임제’란 제도가 정신건강의학과나 신경과 전문의가 아니면 진료하기 어려운 질병이 되는 현실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러한 건강관리와 의료환경에 더해 이른바 ‘가속노화 사회’가 되면서 현재의 30~40대가 부모세대보다 더 빨리 노화를 겪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정희원 교수.

최근 관심 받는 노인의학 전문가 주장

우리나라가 65세 이상 노인인구 1000만명(2023년 기준 950만명) 시대를 코앞에 둔 가운데, 잘못된 노인의료와 건강정책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1월 26일 서울에서 ‘노인 건강관리를 위한 정책방향’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정희원 교수는 ‘한국의 노인 건강관리 정책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정희원 교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아산병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노화, 노인건강관리와 관련, 최근 다양한 활동으로 시니어는 물론 젊은층까지 대중의 관심을 받는 노인의학 전문가다.

생애주기, 다이나믹하다는 사실을 놓친다

정희원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첫째, 생애주기에 맞는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보통 성장이 끝나고 성인이 되면 물만 마셔도 살이 찌는 체질이 되고, 30~60대 사이엔 기초대사량 감소, 뱃살 축적, 스트레스 누적, 영양 과잉 등의 상태가 된다”며, “운동과 소식으로 노화를 막아야 하는 젊은 시기에 오히려 고단백 식사로 가속노화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근육감소와 영양부족으로 노쇠를 경험하는 60대 이후에는 근력운동과 고단백 식이요법이 중요하다”며, “우리나라의 현실은 정반대로, 시니어들이 걷기만 하고 몸에 좋다는 이유로 잡곡밥 소식으로 근육이 더 빠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정 교수는 “사람은 어떤 동네에서 태어났고, 어떤 부모를 만났느냐부터 시작해, 10대·20대·30대에 어떤 생각을 하고, 뭘 먹고, 어떻게 운동했느냐에 따라 개인마다 노화 속도가 굉장한 차이를 보인다”며, “심지어 한 사람 안에 있는 장기들도 매우 다양한 노화 속도를 갖기 때문에 그 사람 나이와 생물학적 나이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심플한 답을 원하는 사회적 요구 잘못”

이처럼 개인의 생애주기를 고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도, “몇 살에는 뭐가 좋다”는 식의 간단명료한 답을 원하는 사회적 요구가 건강관리를 해친다는 지적이다.

정희원 교수는 “사회의 생애 주기에 맞춰 건강 정보를 제시해야 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개별 질환 전문가가 많다”며, “노인증후군은 우울이나 인지기능 저하, 만성질환 문제 등 여러 가지 원인들이 혼재돼 있는데도 특정한 질병으로 단순화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시니어들에게 다양한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TV 프로그램을 예로 들며, “TV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건강 전문가들은 개별 질환에 대한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개별 질환을 예방하는 정보들이 주로 방송된다”며, “그게 아니라 사람의 몸이 다이내믹하기 때문에 때에 맞춰 노화의 정도에 따라 중재할 게 다르다고 말하면 복잡하기 때문에 통편집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많은 건강 정보들이 상당히 왜곡돼 있다”며, “노쇠의 문제에 대해 단순히 ‘단백질 많이 먹고 운동하세요”라는 정보가 아니라 그 사람에 맞는 정확하고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은 없고 질병만 본다”…노인의학 부재

고령이 되면 나타나는 개인의 여러 가지 특성을 무시한 채 특정 질환에만 집중하는 의료체계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정희원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많은 고령환자들이 ‘처방연쇄’에 의한 급성 노쇠를 경험하는 실정”이라며, “어떤 증상이 나타나면 약을 추가적으로 먹으면서 건강이 악화된다”고 했다.

정 교수는 관절 통증으로 시작된 환자의 예를 들었다. 이 환자에게 A의사가 소염진통제를 사용했을 때 심부전이 악화되거나 호흡곤란이 발생하면, B의사가 이뇨제를 사용하고, 이 때문에 전해질 이상이나 어지럼증, 식욕저하가 나타나면 C의사가 소화제와 영양제를 사용하고, 이 탓에 변비, 부종, 인지기능 저하가 생기면 D의사가 치매약을 사용하는 식이다.

아주 경미한 허약 증상을 보였던 환자는 결국 몇 개월 만에 침대에 누워지내는 중증 허약상태로 악화됐다는 것. 이 환자의 약을 15종에서 8종으로 줄였더니 1개월 후에 다시 경미한 허약 상태로 기능이 호전됐다는 것이 정 교수 설명이다.

정 교수는 “사람의 노화 정도는 질병의 스펙트럼,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신체 기능, 내재 역량과 연관돼 있다”며, “내재역량이 감소하면 결국 장기요양의 요구, 즉 사회적 돌봄 요구의 발생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재역량강화”

내재역량은 미국노인병학회와 미국병원협회가 강조하는 건강법으로 소개되고 있다. 삶의 네 가지 축으로, 나에게 중요한 것(What Matters), 이동성(Mobility), 마음건강(Mentation), 건강과 질병(Medical issues)을 중요하게 관리하는 건강법이다.

첫 번째 ‘나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목표와 방식이다. 두 번째 이동성은 신체기능과 활동, 운동이고, 세 번째 마음건강은 정서, 인지, 회복을 말한다. 네 번째 건강과 질병은 건강관리와 의료이용을 뜻한다.

정희원 교수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그의 저서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에서 “ “노화와 질병은 한순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습관에 의해 만들어지며, 요행에 기댈수록 여러 급성, 만성 질환이 발생해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계기를 만든다”면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내재역량을 관리하면 오랜 기간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밝히고 있다.

“30~40, 부모세대보다 빨리 늙는다

정희원 교수는 “베이비부머인 1958년생 앞뒤 10년 세대는 굉장히 건강하게 나이 든 세대”라며 “반면, 현재의 30~40대는 번뇌와 분노가 들끓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30~40대의 건강을 해하는 요인으로는 ▲거주, 재정 상태 등으로 인한 기저스트레스 ▲배달문화를 통한 초가공식품 등의 섭취 증가 ▲유튜브, OTT 등을 통한 수면 박탈 ▲코인 등의 투기 플랫폼 및 각종 소셜미디어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가중 ▲마음챙김을 파괴하는 업무 환경 등을 꼽았다.

여기에 주로 앉아서 보내는 좌식 생활, 고단백 중심 식생활 등도 비만과 노화를 가속화하는 원인으로 보았다. 정 교수는 “젊은 세대의 건강이 부모세대보다 악화되고 있다”며 “모든 건강 지표가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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