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주지영 기자] 퇴직한 베이비부머가 넘쳐나고, 정부의 고령화 사회 일자리 지원정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합한 일자리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정부는 건강한 노년기의 삶을 위해 더 많은 고령자가 일할 수 있는 제도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령사회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활용하는 한편, 건강하고 안정된 노후생활을 지원한다는 핵심 방향은 있지만 일자리 정책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입니다. 퇴직자 또는 고령자에게 절실한 일자리, 기업인에게 필요한 전문인력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본의 사례를 봅니다.
우리나라와 가장 비슷한 문화와 생활패턴을 갖고 있으면서, 이미 초고령사회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퇴직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인생2막을 펼치고 있다.
2007년 일본은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20.6%로 65세 인구비중이 20%를 초과해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그러나 일본 퇴직자들은 자신이 다니던 직장에서는 퇴직하더라도 여전히 사회의 핵심인력으로 인생2막의 삶을 새롭게 개척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퇴직은 있어도, 은퇴는 없다’는 가치관이 퇴직자, 고령자는 물론,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베이비붐세대에 해당하는 ‘단카이세대’가 본격적으로 정년퇴직에 합류했다. 단카이(段階, だんかい)란 ‘뭉치’ ‘덩어리’를 뜻한다. 전후 1947~1949년에 태어나 거대한 인구집단을 이루고 있는 세대를 말한다. 이들의 퇴직은 일본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 자발적 재고용·정년연장 도입
일본은 퇴직자들이 ‘사회의 짐’이 아니라 새로운 활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퇴직자 창업지원과 정년연장 등 퇴직자들이 사회구성원으로 다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 제공하고 있다. 또한, 퇴직한 일손을 다시 불러들여 일하는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미쓰비시중공업, 신일본제철 등은 2003년부터 재고용제도를 도입하고, 60세 정년을 각각 65세와 62세로 끌어올렸다.
쓰네이시조선은 최근 고령기술자의 정년퇴직에 따르는 기술과 경험의 단절을 막고, 임금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중국에 ‘리덱스’란 자회사를 설립, 퇴직한 숙련 노동자들을 재고용하고 있다.
후쿠오카시는 1975년 ‘실버인재센터’를 설립했다. 일을 통해 보람을 찾고 지역사회에 봉사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일본의 고령화 속도가 가속화하자, 일본 정부가 1980년부터 보조금으로 시설운영을 돕고 있다. 현재 1700여개 이상의 실버인재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60세 이상의 퇴직자들의 재취업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고학력 전문직 출신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사무직뿐만 아니라 정보통신분야, 시스템 엔지니어 등 전문직 재취업이 늘고 있다. 특히, 단기 임시직이 아닌,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고 있다.
고령자 ‘나노코포’ 창업 인기
일본에서는 자본에 여유가 있고 과거 회사에서 경영관리를 경험한 시니어들을 중심으로 고령자 창업도 늘고 있다. 이른바 ‘나노코포’(Nanocopo)가 인기다. 나노코포는 ‘아주 작다’는 뜻의 ‘나노’(nano)와 ‘기업’이란 뜻의 ‘코퍼레이션’(coporation)의 합성어다. 창업자 가운데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단카이세대의 영향으로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은퇴 이후 인생2막의 시기를 활동적으로 보내려는 단카이세대 가운데 자원봉사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 예로 도서관에서 비영어권 학생이나 주민들을 대상으로 회화 연습 상대로 활동하는 ‘컨버세이션 파트너’(Conversation Partner) 프로그램이나 ESOL(English to the Speakers of Other Languages) 프로그램과 같은 무료 일본어 강좌가 있다. 도쿄에서 멀지 않은 미소노중학교의 경우 매주 토요일 오전, 외국인을 대상으로 일본어 교실이 열리고 있다.
단카이세대 퇴직금, 소비시장 버팀목
최근 일본 소비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소비자군은 단연 단카이세대다. 그동안 소비가 아니라 생산활동에 전념한 단카이세대가 정년퇴직을 맞이하면서 꼭꼭 닫아온 지갑을 열 것이라는 기대가 매우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퇴직금은 일본 소비시장을 뒷받침할 든든한 버팀목으로 인식되고 있다. 단카이세대의 퇴직금 규모가 53조4000억엔으로 일본 정부의 세입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단카이세대의 자산규모도 130조엔으로,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1000조원에 달한다. 일본의 소비시장을 좌지우지할 만한 소비자군으로 단카이세대가 지목되는 이유다.
일본 업계는 이전 세대와는 달리 고도 성장기에 성장한 단카이세대는 돈을 쓸 줄 아는 세대인 만큼 이들이 형성할 소비시장은 기대 이상일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여행 및 레저·금융산업 호황
단카이세대에 의해 호황을 기대하는 업종으로는 여행과 레저산업이 손꼽힌다. 단기 국내여행이나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단카이세대가 상당수에 이르면서 이들을 붙잡기 위한 상품개발과 마케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신주쿠 대형서점인 ‘기노쿠이냐’는 아예 시니어를 겨냥한 여행도서 코너를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60세 이후에 떠나는 여행’과 같이 은퇴 세대가 주요 타겟이다.
골프장, 스키장, 헬스클럽 등 레저업계도 다양한 할인제도를 도입하면서 단카이세대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저출산과 함께 젊은층 수요가 줄어들자 단카이세대들에게 눈을 돌린 것이다.
단카이세대는 돈이 많아도 소비를 하지 않던 기존 노년층과 달리 소비성향이 상당히 높은 게 특징이다. 이 같은 특성을 활용해 미국 최대의 피트니스 체인인 ‘커브스’(Curves)는 일본 도쿄에 50~60대를 위한 피트니스 체인점을 개설했다.
또한, 골프업체 ‘테일러메이드’는 특수 골프용품을 출시해 상당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 업체의 골프용품 고객의 절반 이상이 50대 이상 은퇴 계층이다.
금융사들도 단카이세대 공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50조엔에 달하는 단카이세대의 퇴직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용상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미국계 ‘피텔리티투신’은 원금손실을 꺼리는 퇴직자들의 속성을 감안해 원금을 보장하면서 수시로 인출이 가능한 퇴직금 활용펀드 출시했고, ‘노무라자산관리’는 단카이세대를 고객으로 유치하기 위해 투자유치설명회에 파견하는 직원을 두 배로 늘렸다.
이처럼 초고령 사회를 맞이한 일본에서 퇴직자들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이미 반세기 전에 도입된 퇴직연금제도 등으로 경제적으로 가장 여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고령화에 대한 장기적이면서도 즉각적인 대응을 통해 고령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