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유별님 기자] 강숙희(59) 씨는 33년 동안 지리교사로 일했습니다. 오로지 집과 학교 밖에 몰랐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돌보지 않은 탓에 몸은 망가졌고, 성대결절로 목소리까지 잃을 위기에 처합니다. 그리고 정년을 앞두고 명예퇴직했습니다. 퇴직 후 한 동안은 해외여행도 즐기면서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도 잠시, 할 일이 없어 막막했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렸습니다. 남들은 어릴 적부터 배우는 자전거를 50중반 퇴직 후에서야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국토종주, 4대강 종주, 동해안 종주, 제주도 해알길 종주까지 마치고 그랜드 슬램 메달을 3개나 땄습니다. 최근엔 직장생활에서 터득한 경험과 노하우를 책으로 남기고 싶어 글쓰기 공부도 열심입니다. 그리고 고소공포증을 이기고 히말라야 트래킹까지. 그야말로 ‘나’를 위해 살아가는 즐거운 인생입니다.
Q. 50대 중반 퇴직 후에야 자전거를 배웠다는 게 사실인가요?
50중반 넘어 퇴직하고 자전거를 배웠어요. 초등학교 때도, 청소년기나 청년기에도 타보지 않던 자전거였지요. 어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면 골절상을 당할까 무서워 배울 생각을 못 한다고 해요. 하지만 저는 지금이 가장 젊을 때고, 내일보다는 빠른 시간이라 생각했어요.
‘늦지 않았어, 오늘이야’,
늦게 배운 자전거로 5일 동안 국토종주를 했고, 4대강(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종주도 했어요. 이어 3일씩 동해안 종주와 제주도 해안 자전거길도 종주했어요. 그랜드 슬램으로 메달을 3개나 땄지요.
요즘은 글쓰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직장다니며 얻었던 경험, 퇴직 후 하는 일들, 그리고 변화된 나 자신을 책으로 엮고 있어요. 제대로 된 문장으로 쓰고 싶어서 연습 중이에요. 유명 교수님 강의도 듣고 독서모임도 꾸준히 하며 책도 많이 읽고 있어요.
물론, 여전히 산행을 즐기고 자전거도 열심히 타고 있답니다.
Q. 퇴직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쳤어요. 사회경험도 없이 바로 교사가 됐지요. 눈뜨면 학교, 해 지면 집, 그렇게 33년을 집과 학교만 다녔어요.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어느 날 안면마비가 왔어요. 운동도 안 하고 학습준비와 학교 일만 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성대 결절이 여러 번 겹치면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음성 치료도 받고 별별 치료를 다해봤지만 소용없었지요. 종일 학생들 앞에서 떠들어야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니 위축됐어요. 그러자 펄펄 날던 열정도 떨어졌어요. 안타깝게도 정년을 8년 앞두고 명예퇴직을 하고 말았어요.
Q. 퇴직 후 생활은 어땠나요?
아무 계획 없이 갑자기 퇴직을 결정했기 때문에 뚜렷하게 할 일은 없었어요. 당장은 출퇴근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 자유롭고 좋았지요. 당시 중국 여행 중이던 남편과 합류해 티베트를 한 달 간 여행했어요. 평소 즐기던 다큐멘터리에서 차마고도 편을 봤거든요. 차마고도의 종착지인 ‘라싸’라는 곳에 있는 ‘포탈라 궁’(Potala Palace)에 가보고 싶었어요. 계곡 한 가운데 고도 3700m 높이에 세워져 있어요. 더 나이 먹으면 힘이 달려 못 갈 것 같아 얼른 갔지요. 모든 것은 적당한 때가 있잖아요.
그 다음은 할 일이 없어 막막했어요. 평생 축적한 경험과 지혜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에 두렵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지요. 남 가르치는 일을 했으니 이젠 나를 위해 뭔가를 배워야겠다고. 먼저 커피를 좋아하니 바리스타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땄어요. 자전거 타기와 함께 취미 하나가 더 늘었어요. 새로운 도전에 신선한 떨림을 느꼈지요.
Q. 고소공포증에도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다는데.
히말라야는 퇴직 전부터 친구들하고 계획했어요.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더 나이 먹어 힘 빠지기 전에 가보자 했지요. 그래서 한 달 2번 정도 산행을 하며 체력을 다졌어요. 집에서도 근육단련을 하며 준비를 단단히 했죠. 이산 저산 높은 산을 자주 다니다 보니 고소공포증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요.
퇴직 1년 후, 드디어 히말라야로 떠나게 됐어요. 촐라체 빙벽을 꼭 보고 싶었거든요. 산악인 박정헌 씨가 손가락 8개와 발가락 2개를 잃어가며 후배를 구해낸 곳이에요. 후에 소설가 박범신이 그 사투의 과정을 ‘촐라체‘란 소설로 발표했지요. 안나푸르나와 랑탕처럼 쉬운 코스가 있었지만, 우리는 EBC(Everest Base Camp) 코스를 트레킹하기로 했어요. 역시 더 나이 먹으면 힘들어 못 가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선택한 것이에요. 한 발 한 발, 고산병을 이겨가며 옮기는 발걸음에 지나온 삶을 투영하며 성찰도 하고 새로운 다짐도 했어요.
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쳤기 때문에 방학이 되면 한 달씩 여행을 했어요. 아프리카 탄자니아, 남아공, 유럽 등 많이 다녔어요. 각 나라마다 문화와 정서, 신앙이 달랐어요.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고 배울 건 배우는 아량이 생겨 좋았지요.
여행을 다녀오면 자존감이 상승해요, 갖가지 어려움에서 나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스스로를 존경하게 만들지요. 앞으로의 삶에서 오는 어려움이 닥쳐도 이겨낼 자신감이 생기는 거예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도 생겨요. 무기력하게 하루를 버리는 삶에서 벗어나는 거죠.
Q. 최근에 다녀온 여행은?
남미 페루에 다녀왔어요. 제 뒤로 명퇴한 선생님들과 셋이서. 우리는 적금을 들어 여행 계획을 다 세웠는데 코로나19가 시작됐지 뭐예요. 하지만 초기 단계라 미련 없이 떠났어요. 그런데 칠레에서 돌아오게 됐어요. 그것도 유럽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말이에요. 돌아와서는 격리되고 검사하고 고생만 했어요. 한 달 여행비를 다 날리고 남미를 제대로 음미도 못한 채. 너무 속상해요.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여행 계획은 세우지 못하고 있어요.
Q. 쓰고 있다는 책은 어떤 내용인가요?
별건 아니지만 도전의 마음과 자가치유 의미를 나누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나이가 많은데, 지금 이 나이에’ 하며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늦지 않았어, 오늘이야’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는 것이지요. 해외여행은 사전 조사와 계획을 잘 세우고 떠나면 돼요. 이색적인 풍물과 색다른 민족의 정서를 느끼는 것은 마음을 가볍게, 삶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주기 때문에 좋아요.
자전거 역시 걷거나 차로 달리는 것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갖게 해요. 오르막길의 고통과 내리막길의 쾌감, 그리고 평지의 평온함이 인생길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삶이 힘들 때는 좀 더 힘을 내고, 삶이 술술 풀릴 때는 마음 균형을 잃지 말고, 평지를 달릴 때는 감사하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여행배낭도 자전거 라이딩도, 삶도,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가지 말았으면 해요. 가볍게 즐기며 항상 감사하는 삶을 잊지 않고 있어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마음도 건강하다는 생각이에요. 앞으로도 꾸준히 산행을 즐기고 자전거도 탈거예요. 지금 같은 여름에는 낮에 해가 뜨거워 야간 라이딩을 즐기고 있어요. 천천히 가거나 빨리 달리면서 고민도 해결하고 스트레스도 풀어요. 자전거는 ‘캔디’라는 이름을 가진 내 친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