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황복실 기자] ‘김영근 제32대 성균관장 扇面展(선면전) – 古典(고전)을 부채질 하자’가 6월 28일부터 7월 23일까지 ‘갤러리 서리풀‘ 개관 기념 초대전으로 열린다. 관람은 무료.
갤러리 서리풀(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48길 103)은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한다. 독고랑 관장은 ‘서리풀‘이 미술작품뿐만 아니라, 무대가 필요한 이들을 위해 꾸며진 복합공간이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근 전 성균관장의 ‘선면전‘이 첫 번째 전시회가 된 것에 감사를 표했다. 오프닝 행사에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예총) 이범헌 회장 등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서리풀 개관과 선면전을 축하했다.
아름다운 마음, 오래 간직하기 위해 부채에 선현의 마음을 담다
6월 28일 오프닝 행사에 선 김영근 전 성균관장은 유림의 선봉장답게 곧고 단아했다. 2시간 가까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양손을 모은 채 흐트러짐이 없었다. 오프닝 전, 전시된 작품 속 필체를 보고 짐작했던 그대로다.
김영근 전 성균관장은 오프닝 인사에서 개관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전시된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전했다.
“성균관장 재임 시절, 단오절이 되면 유림들께 부채를 선물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림이나 글자가 인쇄된 부채를 선물했어요. 그러나 인쇄된 부채보다는 마음을 담아 선물의 의미를 두고 싶었습니다. 선면에 덕담을 쓰기 시작했죠. 선인(先人)의 시문을 적어 유림과 나누고, 함께 본받자는 의미로요. 그것이 발전해 글 옆에 그림을 넣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선현들의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글과 함께 느낀 것을 창작해 그리기도 합니다.”
선면은 부채의 겉면을 말한다. 부채 겉면에 글과 그림을 그린 작품을 전시하는 것을 ‘선면전‘이라 한다. 전시 타이틀인 ‘고전을 부채질 하자‘는 “선현의 교훈과 지혜인 고전을 곁에 두고, 바람을 일으켜 전하자”란 뜻을 담았다.
김영근 전 성균관장이 선면에 고전을 쓴 이유가 있다. 평소 독서 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담고 싶은 시문들을 필사했다. 선현의 마음을 본받으려는 심정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필사 대신 선면에 쓰기로 했다. 받는 사람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어서였다.
김영근 전 성균관장은 경서를 공들여 따로 공부한 것도, 서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다. 많은 작품을 그리다 보니 절로 솜씨가 늘었다고 했다. 솜씨가 늘자, 글 여백에 동양화를 넣고, 민화도 넣었다. 작품들은 어느새 인사아트프라자 박복신 회장의 눈에 띄었다.
“성균관장 재임 시절, 1년에 200점 정도 만든 것 같아요. 3년 동안 500여 점 정도의 선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 200여 점을 인사아트프라자에서 전시했지요.”
2017년, 첫 번째 전시회는 거의 완판될 정도로 성황리에 끝났다. 임기가 끝나고 고향 김해에 내려온 뒤로도 선면 작품을 계속 냈다. 차밭에서 차 농사 짓는 틈틈이 마음을 다듬듯 글을 쓰고, 선현들의 마음을 상상하며 동양화와 민화를 그렸다. 그렇게 이어진 작품 전시회가 갤러리 서리풀에서의 네 번째 전시회다.
한 작품 전하면, 그 사람에게는 특별한 의미의 글이 되고
작품을 보면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한지에 글과 그림을 먼저 쓰고 그린 뒤 부채를 만들었을 법한데, 그림에 입체감이 있었다. 번지듯 그린 붓 터치와 원근이 살아있었다. 김영근 전 성균관장은 “부채를 먼저 완성한 후에 그린 작품도 있다”고 했다.
대나무 살을 놓고 양쪽에 한지를 붙여 만든 선면은 울퉁불퉁하다. 그 위에 정교하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란 쉽지 않을 텐데, 얼마나 많은 시간 공들였는지 엿보인다. 사실 세밀하게 쓴 글자는 읽기가 어렵다. 단선(團扇, 둥근 모양 부채) 위에 그려진 민화를 보며 상상해 보지만 쉽지 않다. 김영근 전 성균관장의 부연이다.
“이렇게 많은 작품을 다 읽어내기는 유림도 쉽지 않습니다. 다만 한 작품이 한 사람에게 전해지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단오절에 선물로 받은 부채의 글은 그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가 될 테니까요.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라도 읽으려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든 선현들의 뜻을 후대에 전하고픈 마음이 진하다.
아름다웠던 효 문화, 애국·애민 정신 사라져 간다
김영근 전 성균관장은 신분의 귀천에 구애받지 않는 애국·애민 정신을 전승하려 한다. 우리 민족 삶의 철학과 혼이 제대로 전해지면 애국·애민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때문에, 과거의 유림 중에도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셀 수 없다.
“조선시대의 고종황제는 유교만이 종교(宗敎)라 했습니다. 삶의 철학이고 가장 큰 가르침이라고요. 일제강점기에 유교 문화가 흐려지기 시작해 지금처럼 선대와 후대 사이에 큰 괴리가 생긴 겁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효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이지요. 윗사람들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어른다운 모습도 잃었고요. 특히, 어른들이 올바른 책임감과 가치관을 갖고 스스로 권위를 높여야 하는데, 대접만 받으려 하니 이상한 소리도 듣습니다.”
‘이상한 소리’가 혹시 ‘꼰대‘냐 되묻자,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학교 교육도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이 맞물려야 제대로 된 교육이 되는데, 가정에서 아무리 유교 문화를 지킨다 해도 교육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 부분이 아쉬워 아이들 방학을 이용해 ‘향교 특별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지만,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김영근 전 성균관장은 향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많이 아쉬워한다. 재임 시절 활성화를 위해 그토록 애썼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교과 과목에 孝(효)와 仁(인)을 강조한 선현들의 뜻을 가르치면 좋겠는데 그것조차 어렵다. 정신이 건강하면 겪지 않을 정신질환 문제도 원인을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자제분들은 어떠냐고 묻자, “계승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근본만큼은 제대로 섰을 겁니다”라며 학교에서의 교육을 재차 아쉬워했다.
제갈량 출사표·도연명 귀거래사, 그리고 적벽부
김영근 전 성균관장은 유교 집안에서 자랐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9대째 향교 전교(典校)를 배출한 집안이다. 어릴 적부터 웃어른께 유교 교육을 받았고, 유교 문화가 저절로 몸에 뱄다. 여전히 제갈량의 ‘출사표’를 읽고,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음미한다. 그리고 ‘적벽부‘ 읽기를 좋아한다.
낭만적인 시와 때로는 애절한 문장 속에서 마음을 풀고, 공자와 맹자의 교훈에서 길을 찾는다.
때로는 포장친 수레를 몰기도 하고
때로는 조각배 띄워 노를 저으리라
깊숙하고 그윽한 굽이진 골짝도 찾아 나서고
또 험한 산을 넘고 가파른 언덕길도 지나리라.
–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