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황복실 기자] 푸릇푸릇 오른 잔디 위를 나란히 걸어오는 강봉금(66·여)씨 부부의 모습이 누구보다 활기차다.
“벌써 만보 가까이 걸었어요.”
스마트폰으로 운동량을 확인하며 남편을 바라보는 목소리에 재미가 묻어난다. 이어서 골프채를 정리해 남편의 등을 툭툭치며 활짝 웃자, 남편은 어떤 신호라도 받은 듯, 골프채를 들고 “(인터뷰) 잘하고 와요”라며 자리를 비워 준다.
그늘막 아래 앉은 강봉금씨가 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주저앉는 남성·일어서는 여성”…대반전 은퇴생활
대부분의 시니어 남성들은 친구라고 해봐야 업무와 일터에서 맺어진 수직관계의 사람들이다.
은퇴 직후 못 해본 일들을 하기 위해 버킷리스트를 만들어 여행을 가고, 골프도 하면서 한동안 여유를 즐긴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르면 갈 곳도, 반기는 곳도 없다. 더구나 베이비부머들은 집안일을 돕거나 집안일은 거의 해본 적 없어 스스로 우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떤가. 남편 은퇴 즈음, 자녀 대부분을 결혼시키고, 손주 양육 돕지 않으면 그동안 수평으로 맺어 놓은 친구들과 모임으로 한창 바쁘다. 그야말로 삼시세끼 집에서 먹는 남편이 버겁기만 하다.
강봉금씨 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역(使役)에 진액을 쏟던 부부의 삶은 가족 중심이기보다는 사역 중심의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을 살았다. 더구나 사람을 책임지는 일을 하다 보니 근무시간도 정해지지 않아 새벽이고 밤이고 일이 생기면 달려가야 했다. 부부의 대화는 주변 사람들과 아이들 이야기가 전부였고, 두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각자의 성을 쌓아 갔다. 더구나 이들 부부는 서로의 기질이 완전히 달라 충돌이 잦았다.
“우리는 부부인데…명령과 복종의 대상이었던가?”
“그때 저는 육체적인 피로보다 정신적으로 많이 시달렸어요. 내가 사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그 일이 내겐 피난처였거든요. 내 가치를 높이는 일이고 활력소라 생각했어요.”
남편은 계속해서 사역의 영역을 넓혔고, 그는 좌충우돌 남편의 사역을 따르느라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다가 덜컥 유방암에 걸렸어요. 병원 생활과 함께 요양을 위해 숲속 작은 집에 얼마간 머문 적이 있어요. 병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내 인생 처음으로 맞는 휴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후,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명목으로 남편에 의한 ‘강제’ 운동을 시작했다. 자신과 맞지 않는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는 또 쌓여갔다. 배드민턴을 치다 발목 부상을 당했다. 걷기운동은 무료하기만 했다.
예전과 같은 사역은 엄두도 못 낼 즈음, 혼자 사역을 감당하던 남편의 건강에도 이상 신호가 왔다.
“진이 빠진 남편이 쓰러지기 일보 직전 방전상태가 왔어요. 조기은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부부의 은퇴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은퇴하면 편할 줄 알았던 부부의 삶은 또 다른 한계에 부딪혔다. 각자의 마음을 나누기 어려웠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상대의 성향은 서로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졌다.
“남편과의 대화는 대부분 일방적이었어요. 명령과 복종의 관계였지요. 갑자기 한가해진 시간도 한 몫 했고요.”
그즈음 지인이 ‘파크골프’가 엄청 재밌다면서 권했다. 지인은 “게임 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운동을 할 수 있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반 골프와는 다르게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다”며 일단 파크골프장에 가자고 했다.
파크골프, 사회적이면서 소박한 시니어 운동
파크골프는 ‘park’와 ‘golf’의 합성어로, 일본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레크리에이션, 커뮤니티, 사회적 서비스의 의미가 함축돼 있고, 공원을 골프장으로 이용해 골프와 비슷한 운동이다. 우드로 된 86cm 골프채와 공만 준비되면 할 수 있고, 비용도 18홀에 6000원~1만 원에 불과해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에 처음 보급됐지만, 본격적으로 보급된 때는 2004년 한강 파크골프장부터다. 도시공원 문화가 확산되면서 눈으로만 보는 공원에서 레저, 문화, 이벤트, 스포츠를 즐기는 공원으로 변했고, 파크골프가 합류했다.
지금은 도시 곳곳과 지방에 널리 분포해 파크골프를 즐기는 인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골프보다 쉬워 노인인구가 많아지는 초고령사회에서 시니어 맞춤 운동이기도 하다. 예약하지 않아도 늘 열린 공간에서 언제나 즐길 수 있어 편리하다.
파크골프, 부부 대화물꼬 터버린 마중물
골프채부터 마련해 시작한 파크골프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공원의 자연과 함께 잔디밭을 걸으며 게임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더구나 배우기도 쉬워 금새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부부는 돈내기 게임을 하곤 했는데 홀당 1000원을 걸고 주거니 받거니 운동하며 웃고 떠들게 된다.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내가 그렇게 웃는 걸 처음 본다고요. 운동 후에는 내기에서 모은 돈으로 외식도 즐기고 멋진 카페서 커피도 마셔요. 마주 보고 5분 대화도 힘들었는데,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1시간이 훌쩍 지나더라고요.”
부부 대화의 물꼬가 터지자, 자연스럽게 서로의 내면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가장 힘들었던 마음 나누기가 해결됐다. 굳게 쌓았던 서로의 담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일방적이었던 남편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계획해 “꿈에도 그리던 전원주택을 짓고 함께 꽃밭을 가꾸며 나머지 삶은 동지애와 전우애로 살아가자”는 다짐도 했다. 가사 분담도 하고 설거지, 청소, 분리수거도 하는 남편의 변화는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은 “은퇴 후 줄어든 수입 탓에 한쪽이 재정을 맡으면 다른 한쪽은 돈을 쓸 때마다 상대 눈치를 봐야 한다”며 재정도 분리했다. 모든 수입을 반으로 나눠 공동부담하고, 서로의 지출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각자의 돈으로 내기 골프도 치는 거예요. 돈 딸 때 엄청나게 신나죠. 하하!
남편은 내가 파크골프에 끼지 않으면 재미없대요. 저도 남편과의 게임이 가장 편해요. 내게는 특별히 ‘몰간’도 주고 서로 배려하면서 게임하면 힐링되고, 몰랐던 남편의 매력에 빠지기도 해요. 다 늙어서 웃기죠? “
강봉금씨는 남편과 함께 일찍 운동을 마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나선다. 그는 “사역이라는 생각보다 함께 하는 기쁨이 크다”며, “은퇴 후에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냈는데, 딱 맞는 일과 운동이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켰다”면서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