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 11일, ‘빼빼로데이’
마치 젓가락처럼 길쭉길쭉한 초콜릿 과자를 주고 받는 날이란다. 이 과자를 만들어 파는 제과사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였는지, 얇고 긴 과자를 오독오독 씹는 재미를 ‘숭배’한 소비자들이 만든 날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교묘하고 얄팍한 상술이든, 충성도 높은 고객들의 자발적 소비문화든, 곱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매년 11월 11일, ‘농업인의 날’
1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농업과 생명의 근간인 흙(土)이 십(十)과 일(一)로 이뤄져 있는 점에 착안, 1996년부터 정부기념일이 됐고, 매년 기념식을 진행하고 있다. 위키백과를 보면, 일제강점기 6월 14일이 ‘권농일’로 제정됐다. 해방 후 일제 청산 차원에서 6월 15일로 날짜를 바꿔 ‘농민의 날’로 불렀다. 1996년엔 ‘권농의 날’을 폐지하고 11월 11일을 ‘농어업인의 날’로 지정했다가 1997년 ‘농업인의 날’로 바꿨다.
올해 11월 10일, ‘제28회 농업인의 날’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오후 7시쯤 보도자료를 내고, “‘제28회 농업인의 날’을 맞아 농업인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10일 경기 수원 서호 잔디광장에서 ‘대한민국 농업인 한마음 대축제’를 개최했다”고 했다. 덧붙여, “전국 각지의 농업인 5,300여 명의 마음이 한 곳에 모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등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작은 글씨로 부연했다. ‘제1회(1996) 4,000여명 참석이 그간 최대 규모’. 1996년 농업인의 날 제정 이후 올해 가장 성대한 기념식을 치렀다는, 말하자면 소심한 ‘자뻑’인 셈이다. 올해는 왜 10일? 11일이 토요일이었느니까.
2006년 11월 11일, ‘가래떡 데이’
누구 아이디어인지 확실치 않으나, 당시 기발하다는 평과 어이없다는 평이 교차했다. 의미심장한 의미를 부여해 11월 11일을 농업인의날로 제정하기는 했는데, 한낱 과자부스러기에 한민족 식생활을 책임지는 농업인이 밀리다니! 여러 사람 분통 터지는 일. 쌀소비를 촉진시키자, 그리고 ‘빼빼로’보다 훨씬 크고 길쭉하니 제격이다, 그래서 ‘가래떡 데이’가 나왔다. 혹시 웃고 있는가. 아직도 해마다 11월 11일 ‘가래떡 데이’ 기념식을 갖는 기관과 단체가 있으니, 진심 어린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매년 10월 15일, ‘여성농업인의 날’
강조컨데, ‘농업인’ 이전에 ‘여성’을 기억하자. 과거 농경사회에서 여성은 남성과 다름 없는 노동강도와 함께 가사, 육아, 부모 봉양까지 1인 4역, 5역을 감내한 실제 주인공이었다. 국제연합(UN)도 2007년, 매년 10월 15일을 ‘세계 여성농업인의 날(International Day of Rural Women)’로 제정, 여성농업인의 삶과 지위 향상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22년 10월 18일 서울에서 7개 여성농업인단체와 제1회 ‘여성농업인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올해는 10월 12일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제2회 기념식을 가졌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조선 세종 때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設)’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천하의 근본”이라 했다. 과거 농경사회는 많은 노동력에 의존했고, 자연스레 아들이 선호됐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농업사회를 지탱한 근간이 여성이란 사실을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지어, 그 여성들의 고초를 반평생 목격한 배우자들조차. 빼빼로에 눌린 농업인과 가래떡, 그 모두에 눌린 여성농업인들. 아내이면서 엄마이고, 딸이면서 며느리인, 그리고 진정한 농업인으로 살아가는 여성들께 깊은 동지애, 진심어린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그들이 진정한 천하의 근본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