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김지유 기자] 흔히 북한 독재정권의 체제선전물로 인식하는 ‘조선화’(朝鮮畵)를 하나의 예술 장르로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특히, 조선화 권위자 문범강 화백(조지타운대 교수)이 강사로 직접 나서 9차례 평양을 방문해 모은 자료들을 공개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문범강 화백은 6월 11일 오후 경희사이버대학교에서 열린 ‘평양미술 조선화:혁명인가 예술인가’란 주제의 특강에서 “북한 미술 ‘조선화’를 체제선전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예술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1948년 이후 북한은 사회주의 사실주의 예술을 통해 체제선전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수묵채색화 기법을 사용해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조선화’란 새로운 미술 분야를 정립했다.
이후 1990년대 사회주의 몰락과 함께 동유럽에서는 자취를 감춘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술 분야는 북한에서 오히려 ‘조선화’란 이름으로 꽃 피웠다.
문범강 화백은 이날 북한 미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장르로 손꼽히는 조선화의 예술성에 주목해 ‘북한의 미술은 온통 체제선전용 프로파간다 뿐인가, 예술성은 하나도 없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문 화백 강연의 핵심은 북한의 미술의 생산체계와 제작 방식, 미술 교육 체계 등이었다.
문 화백은 “북한에도 예술은 존재하고, 같은 뿌리와 기법에서 출발한 그림이 다른 양상으로 분화하는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 화백은 “북한 예술가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고, 체제선전 목적에서 벗어난 작품 활동 때문에 처벌받거나 숙청당하지는 않는다”며, “북한 예술가들은 존경받는 지위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고 전했다.
문 화백은 북한 화가 한성철·김용건·김철·리현옥·장길남 등의 그림과 관련 이야기를 소개하고 예술가의 입장에서 구도, 붓 터치와 표현기법 등을 해설했다. 한국화, 북한 그림, 중국화를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문범강 화백은 대성황을 이뤘던 2018년 광주비엔날레 전시 상황을 떠올리며 “서울에서도 북한 미술 전시회가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광주비엔날레에 따르면, 문범강 화백은 2018년 9~11월 열린 광주비엔날레에서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전을 기획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품은 대부분 평양 만수대창작사에서 창작된 작품이 주를 이뤘다.
문범강 화백이 북경 만수대창작사미술관장 소장품 15점, 국내 개인 및 미술관 소장 3점, 그리고 워싱턴 예도예술재단(Yedo Arts Foundation)에서 소품 4점 등 22점을 선별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청중 50여 명은 처음 접하는 북한 미술에 놀라움을 표하며, 특히 북한의 미술대학 입시 경쟁률이 25대1이란 설명을 듣고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일부 청중은 “북한 미술뿐 아니라 남북 교류와 통일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 교수는 청중과의 질의응답에서 북한 예술 표현의 자유, 재료 수급 방식, 미국 및 광주 비엔날레에서 열린 전시회 등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이날 청중으로 참석한 한 60대 조선화 애호가는 “집을 팔아 북한 미술 작품 수백 점을 구매해 소장하고 있다”며, “주로 중국을 통해 그림을 구매하는데 그 가운데는 상당량의 모작도 있기 때문에 진품을 가리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문범강 화백은 세계 최초로 미국과 한국에서 북한미술전을 펼친 주인공이다. 북한에서도 조선화 마니아로 통할 정도로 북한미술 연구의 권위자다.
문범강 화백은 2010년 워싱턴에서 북한의 조선화 한 점을 처음 본 이후 경이로움을 느껴 북한 미술을 연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1년부터 6년에 걸쳐 총 9차례 평양을 방문해 모은 자료들을 이번 특강에서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