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노인 교통안전을 위해 설치된 노인보호구역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해마다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가 증가하는 만큼 노인보호구역에 대한 체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노인 보행자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충북 청주시 한 도로에서 길을 건너던 70대 A씨가 경차에 치여 사망했다. 사고가 난 장소는 노인보호구역이었다.
노인인구가 어린이인구를 크게 앞지르고 있지만, 노인보호구역은 어린이보호구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지역적 편차도 커서 충남지역에 노인보호구역 4곳 중 1곳이 설치된 반면, 세종시는 5곳에 불과하다.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는 어르신들이 생활하면서 많이 이용하는 시장이나 병의원 주변에서 일어나는데, 노인보호구역은 노인복지시설 주변에만 설치하도록 규정한 법도 문제다. 행정부나 입법부의 무관심을 반영하듯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노인보호구역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다.
보호구역, 왜 지정되고 있나
도로교통공단 등에 따르면 2020년 국내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건수는 9739건에 달한다. 이중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명 당 9.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현행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제2조에 의하면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자, 어린이 등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자를 말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교통약자 가운데 보호구역을 지정해 운영하는 대상은 어린이, 고령자, 장애인에 한정돼 있다.
교통약자로 분류되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의 경우 상대적으로 차대 보행자 교통사고 위험성이 높은 집단이고, 실제로도 보행자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이들 교통약자의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보호구역을 운영하고 있다.
1995년 어린이보호구역이 지정되기 시작한 이후로 2007년 노인보호구역, 2011년 장애인보호구역 등 매년 보호구역의 지정 수는 증가하고 있다.
노인보호구역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실버존’(silver zone)이라 불리는 노인보호구역은 2007년 5월 행정자치부령으로 ‘노인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이 제정·시행되면서부터 지정되기 시작했다. 2011년 1월 제정된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으로 통합돼 관리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노인보호구역이란 교통약자인 노인을 교통사고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요양시설, 경로당, 노인복지시설 등 노인들의 통행량이 많은 구역을 선정해 지정하는 교통약자보호구역으로, ‘실버존’이라고도 한다.
노인보호구역은 지자체가 지정 및 운영하고, 노인보호구역에서는 어린이보호구역과 동일하게 통행속도를 시속 30Km로 제한되고 주정차가 금지된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표지판, 도로표지 등 도로부속물을 설치할 수 있고, 보호구역 내 교통안전시설 설치가 가능하다.
어린이보호구역보다 적고, 지역편차도 커
2020년 현재, 우리나라라 14세 이하 인구는 12.3%(638만 명), 65세 이상 인구는 16.0%(829만 명)이다. 아이보다 노인인구가 훨씬 많다. 하지만, 노인보호구역은 2019년 12월 기준 전국적으로 1932곳이다. 어린이보호구역은 같은 시점 1만6912곳에 달한다. 노인보호구역 수는 어린이보호구역의 10분의 1(11.4%)에 불과하다. 노인인구가 14세 이하 어린이보다 훨씬 많지만 보호구역은 반대다.
노인보호구역은 지역적으로도 지나친 편차를 보인다.
2019년말 기준, 전국 노인보호구역 1932곳 가운데 시도별로 가장 많이 설치된 곳은 의외로 충남이었다. 전국 노인보호구역 4곳 중 1곳(471곳, 24.3%)이 충남에 설치됐다. 이어 경기도(267곳), 충북(192곳), 경북(162곳), 서울(146곳) 순이었다. 반면, 세종시는 5곳에 불과했고, 전북(45곳), 전남(49곳), 강원(51곳), 광주(52곳), 대구(55곳) 등은 50곳 안팎에 불과했다. 노인보호구역 설치 및 운영은 자치단체 소관이어서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의 의지 차이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빈틈 많은 노인보호구역 지정 방식
노인보호구역은 도로교통법에 따라, 노인이 주로 이용하는 ‘시설’의 주변도로 가운데 일정 구간을 지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로당을 비롯해 요양시설, 노인복지시설 주변도로가 지정대상이다. 여기에 자연공원, 도시공원, 생활체육시설이 추가된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이른바 ‘노인생활인구’가 많은 곳은 노인보호구역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실제로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10월말~11월초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다발지역 43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장소는 10건 중 8건은 시장(204건, 65%)과 역‧터미널 주변(44건, 14%)이었다.
한 방송사가 2019년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산 곳을 업종별로 분석했더니, 행안부 조사와 마찬가지로 전통시장이 42.4%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전통시장 5곳 중 2곳 주변에서 노인 교통사고가 1건 이상 발생했다. 이어 의원(36.1%), 안경원(34.9%) 순이었다.
교통사고는 시장이나 병의원 주변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노인보호구역은 엉뚱하게 노인복지시설 주변에 설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도 문제
노인 교통안전을 위한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행정안전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2021년 교통약자·보행자 안전사업 예산은 전체 2165억8000만원으로, 이 가운데 1983억3000만원, 전체의 91.6%가 어린이보호구역 개선으로 편성됐다. 노인보호구역 예산은 60억원으로 전체 2.8%에 불과하다.
전년 예산대비 어린이보호구역 예산은 708억7900만원 증가한 반면, 노인보호구역 예산은 오히려 200만원이 줄어들었다.
어린이보호구역 예산이 더욱 커진 것은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도로교통법 개정안, 이른바 ‘민식이법’에 따라 어린이 보호구역에 CCTV(무인교통단속장비)를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2021년 어린이보호구역 예산도 CCTV를 전면 설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란 분석이다. 2019년 기준 어린이보호구역은 1만6912곳에 달했지만, 지난해 8월 기준 어린이보호구역에는 CCTV 설치는 1146곳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인보호구역 가운데 CCTV가 설치된 곳은 전국적으로 46곳에 불과했다.
노인보호구역 처벌 강화, 효과는 ‘글쎄’
교통약자보호구역인 어린이보호구역, 노인보호구역, 장애인보호구역에서는 법규 위반 시 과태료, 범칙금, 벌점을 기존에 비해 2배로 부과한다. 휴일과 공휴일 관계없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매일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속도가 제한속도인 시속 30km보다 시속 20km 이내에서 초과되면 일반도록 범칙금 3만원보다 2배 많은 6반원이 부과된다. 주정차위반도 일반도로 4만원이지만, 노인보호구역에서는 8만원이 부과된다.
노인보호구역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보행자사고를 내면 10대 중과실 항목에 추가해 종합보험 가입 여부에 관계없이 형사처벌된다. 그간 노인보호구역에서 노인 보행자와 자동차가 부딪혀도 10대 중과실 항목에 들어가지 않았다. 교통사고를 냈더라도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으면 형사처벌을 피하고, 민사적 손해 배상 의무만 있었다.
문제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노인보호구역이 설치된 장소를 이용하는 노인인구가 적은 탓에 아무리 처벌을 강화해도 실제 노인보행자 교통사고를 줄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은 “우리나라가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만큼 노인문제에 대한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특히 교통사고에 취약한 어르신들을 위해 안전한 보행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지만, 어린이에 비해 노인 교통안전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