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메가 프로젝트 시대, 기후부는 ‘심판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20년 넘게 하루도 기후위기를 잊고 산 날이 없다. 그 사이 수많은 보고서와 감축 계획이 만들어졌고, 그때마다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됐다. 그런데 정작 온실가스는 목표대로 줄어든 적이 없다. 그 많은 계획과 그 많은 세금을 쓰고도 왜 감축에 실패했는지, 누구의 책임인지를 제대로 따져 묻는 자리는 좀처럼 보지 못했다.

그사이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매년 약 2.2ppm씩 꾸준히 올라갔다. 2000년대 초반 380ppm 수준이던 농도는 이제 420ppm을 넘어섰다. 이미 대기에 쌓인 온실가스만으로도, 오늘 당장 배출을 ‘0’으로 만든다 해도 지구 평균기온은 1.2도 이상 오르는 것이 기정사실이 됐다. 그리고 그 상승분은 대륙마다 다른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어느 곳은 산불로, 어느 곳은 폭염으로, 어느 곳은 폭우로.

이런 와중에 국가는 반도체와 AI를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정하고 수천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이 계획들이 하나같이 대용량의 전력과 용수를 필요로 하고, 그만큼 대량의 온실가스 배출 가능성도 안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년간 한국 시민사회가 반복적으로 제기해 온 전형적인 ‘개발-환경 갈등’ 구조가, 산업의 얼굴만 바뀐 채 거의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더 답답한 것은 기후부(환경부)의 태도다. 국가 에너지 소비를 이만큼 늘리는 계획이 얼마만큼의 탄소를 배출하게 될지는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대통령 앞에서는 “전기와 용수를 문제없이 공급하겠다”고 당당히 보고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온실가스 감축과 직결된 에너지 정책이 ‘전력 수요 맞추기’ 중심으로 변질되면서, 정작 국가가 스스로 내걸었던 탄소중립·탈석탄 목표와 충돌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전국을 돌며 국민과 약속했던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정작 그 약속을 주도해 만든 곳에서 스스로 흔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은 참담하다.

어떤 계획을 세워도 산업 발전과 온실가스 배출이 함께 줄어드는 ‘탈동조(脫同調)’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오래 지켜본 조바심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온실가스만 배출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 아래, 탄소중립과 긴장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신규 원전, 노후 원전 수명 연장, 송전선로 확충, 양수발전 같은 수단들이 별다른 사회적 논의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작은 국토에서 촘촘히 모여 살아야 하고, 에너지도 먹거리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의 현실은 정치적 불안이나 경제적 불안 앞에서 더 조급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니 수천 km 밖에서 벌어지는 전쟁 하나에도 유가가 출렁이고, 그 여파로 우리 삶이 곧바로 불편해진다. 에너지 자립도가 낮은 나라일수록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더 정교하고 냉정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결국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국가와 국민이 함께 관심을 갖고 실효성 있는 감축 계획을 세워야 하고, 더 나아가 잘 먹고 잘 살면서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좋은 정책으로 산업이 성장해 먹고사는 걱정 없이 사는 세상도 필요하고, 동시에 환경 보전과 기후 대응을 통해 온실가스를 목표대로 줄여가는 균형 잡힌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후부가 개발 계획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제 역할을 다하는 ‘심판자’로 서야 한다. 산업 발전과 온실가스 감축이 함께 공생하는 탈동조 사회,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먹거리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먹거리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대기의 온도 역시, 결코 그보다 가볍지 않은 문제다.

서일석 기자
서일석 기자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시민 교육과 국가와 지방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 정책의 계획 이행 결과 와 평가 정보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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