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추미양 기자] 기업을 상대로 금융 비지니스를 하면서 주말에는 골프를 즐기던 대기업 부장, 40대 후반 직장을 떠난 뒤 일찍 제2의 인생을 마주하고 있다. 7년째 상담을 이어가는 배테랑 김학범(65) 컨설턴트가 일하는 곳은 서울 여의도에 자리한 영등포50플러스센터다. 이곳에서 서울시 ‘50+ 보람일자리사업’의 하나인 ‘50+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상담실에서 만난 그의 얼굴에서 나이를 잊게 하는 활력과 동년배로서의 친근감이 느껴진다.
컨설턴트는 어떤 일을 하나?
퇴직 예정이거나 은퇴한 서울시 50+세대(만50~64세)에게 인생 후반전을 통합적으로 재설계 할 수 있도록 원스톱 상담과 컨설팅, 사후 관리 상담을 제공한다. 향후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일, 활동, 관계, 재무 4대 영역을 집중적으로 진단하여 생애 설계를 돕는다.
컨설턴트를 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금융보험업종에서 부장으로 일하다가 승진 가능성이 없어 40대 후반 명예퇴직했다. 그 후 중소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옮겨 나름 평범한 중산층의 보통 사람으로 지냈는데, 창업하여 개인사업을 하다가 실패를 맛봤다. 눈높이를 낮춰 재취업에 도전했다. 하지만 ‘나이’라는 장벽이 가로막았다. 경제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지만 6개월 동안 실의와 좌절에 빠져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니 자존감은 바닥에 떨어졌고 무기력해졌다.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2016년 서울시 보람일자리인 50+컨설턴트를 시작하게 됐다.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컨설턴트가 되기 위한 준비를 따로 하지 않았다. 2014년 금융권 퇴직자를 위한 강좌 중 ‘사회적 경제 기업 설립’ 과정에 참여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2015년에는 ‘전직지원전문가’ 훈련과정 350시간을 마쳤고, 이어서 ‘커리어 컨설턴트’ 과정과 ‘사회적 경제’ 과정을 이수했다. 이때 자기탐색 활동을 하면서 상담 분야에 적성과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업을 상대로 계약을 체결,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고객을 상담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상담실에는 어떤 분들이 찾아오나?
다양한 사연을 가진 분들이 찾아오는데 요즘 상담의 절반은 ‘일’이다. 일 관련 상담을 할 때 가장 먼저 왜 일을 하려는지 묻는다. 일거리를 찾게 된 계기가 단지 경제적 이유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돈보다 가정 내 불화가 더 큰 문제인 경우가 많아 가족 상담을 병행한다. 어떤 여성 내담자는 자식이 모두 독립했고 이혼 욕구도 있어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일거리를 찾았다. 한 남성 내담자는 가족 몰래 집을 담보로 대출받아 주식에 투자하여 파산한 뒤 가족에게 외면당한 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상담실을 찾았다.
생계형 일자리를 구하는 분들에겐 어떤 도움을 드리나?
일자리 관련 정보는 제공하지만, 일자리를 알선하지는 않는다. 다만, 다급히 달려온 분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 가장 빠르고 쉽게 일자리를 찾는 방법을 안내한다. 우선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퇴직했다는 사실을 지인에게 문자나 전화로 적극 알리고 일자리 소개를 부탁하는 것이 좋다. 구청마다 운영하는 일자리 관련 플랫폼에서 취업 정보를 검색하거나 구청의 일자리경제과를 찾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일단 부딪쳐서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찾도록 독려한다.
사회공헌 일자리에는 어떤 것이 있나?
봉사활동을 찾는 분도 있지만 대부분 활동비를 받을 수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원한다. 50+컨설턴트와 같은 서울시 50+ 보람일자리가 있는데 올해는 31개 분야에서 3952명을 모집했다. 만50세~만67세(또는 만40세~만67세 차상위 계층) 서울시 거주자 또는 사업장 주소지가 서울시인 사업자등록증 상 대표자면 참여할 수 있다. 월 최대 57시간을 일하면 최대 52만5000원(세전)을 받는다. 주의할 점이 있다. 활동기간이 1년 이내기 때문에 다음 해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준비해야 한다. 결국 일자리 상담으로 시작했지만 생애 설계 상담으로 이어진다.
보람을 느꼈던 상담 사례가 궁금하다.
암 투병으로 심신이 약해진 60대 중반 여성이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 상담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으로 ‘건강코디네이터’를 추천했다. 이후 이 여성에게 딱 맞는 일자리 정보가 눈에 띄어 바로 전화를 했다. 서울시 주관 국제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양성과정인데, 2년 동안 일자리 연계 특전도 주는 것이었다. 나이가 많다며 머뭇거렸지만 오랜 영어 강사 경력과 간호사 자격증이 있으니 도전해보도록 격려했고, 최종 합격했다.
상담을 하면서 안타깝다고 느낀 점은?
인생 후반기 생애설계를 위해서는 일, 재무, 가족, 여가, 건강, 사회공헌, 사회적 관계 등 이른바 ‘7대 영역’에 대한 진단을 바탕으로 상담해야 한다. 그러나 일, 활동, 관계, 재무 등 ‘4대 영역’으로 통합되면서 상담 폭이 좁아졌다. 상담실이 시니어에게 단순히 일자리 정보를 전달하는 취업지원센터가 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보람일자리’ 개선점은?
서울시 구(區) 단위 50플러스센터는 인기 강좌와 일거리가 있어야 시니어들이 많이 찾는다. 현재 재단이 보람일자리 운영을 주로 맡고 있는데, 동작구 ‘현충원보람이’, 강서구 ‘공항동행사업단’과 같은 ‘지역특화일자리’가 늘어나 시니어들의 발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퇴직 예정자에게 조언을 한다면?
일단 본인이 퇴직 후 하고 싶은 일을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써보길 바란다. 하고 싶은 일은 ‘즐기자, 배우자, 이루자, 나누자’ 4개 부분으로 나뉜다. 퇴직 후 쉬고 싶고 시간도 많으니 일단 즐기고 싶어진다. 나도 퇴직 후 골프, 등산, 자전거 라이딩으로 근 2년간 즐기기만 했다. 그런데 너무 소비적으로 산 건 아닐까? 어느 순간 이런 삶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아갈 후반기 인생 설계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50플러스 캠퍼스 등 전문상담기관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