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년간 대한민국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외치며 수많은 정책을 추진해왔음에도,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목표의 달성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 같은 평가에 따라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선언만 요란하고 실천은 실패한” 국가, 즉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보고서는 이러한 실패의 근본 원인을 ‘무력화된 기후 거버넌스 시스템’으로 지목하며, 위기 극복을 위한 혁명적 개혁과 시민 참여 확대를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2009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제정하고, 2015년에는 배출권거래제(K-ETS)를 도입했다. 이후 파리협정 이행과 2050 탄소중립 선언,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등 일련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 주도의 정책들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고, 심각한 이행 격차(implementation gap)만을 낳았다.
특히 시민사회는 2030 NDC 감축 목표(2018년 대비 40%)가 국제 권고 수준(동일 기준 51% 이상)에 비해 현저히 낮고, 감축 책임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접근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과 해외 감축 등 불확실한 수단에 의존하고 있으며, 핵심 부문의 감축 이행은 지지부진하다. 특히 전기차 전환 부진은 수송부문 감축의 심각한 장애로 꼽힌다.
한국형 배출권거래제(K-ETS)는 2015년 도입 이후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 정책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탄소배출권 가격이 2024년 10월 기준 톤당 1만1000원에 불과해 실질적인 감축 유인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자발적 감축보다는 배출권 구매에 의존하고 있으며, 무상할당이 과도하게 이뤄져 감축 투자 유인이 약화되고 있다.
보고서는 산업계의 지속적인 로비와 규제 완화 요구, 그리고 이를 견제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을 K-ETS 실패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는 결국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한 결과이며,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방증한다.
재생에너지 정책 역시 ‘정권 교체마다 변경되는 정책’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심화되며, 2022년 기준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은 3%대에 머물렀다. 이는 G20 평균인 24%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정부는 원자력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 방향을 선회하며 재생에너지 목표를 하향 조정했고, 인허가 규제, 전력망 부족, 지역 반발 등 구조적 장벽 해결에도 소극적이었다. 이로 인해 시장은 위축됐고, 재생에너지 확대는 사실상 정체됐다.
기후 정책 실패의 핵심 원인은 ‘기후 거버넌스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기후 정책의 총괄 부처가 부재하고, 부처 간 칸막이로 인해 정책의 일관성과 통합성이 저해되고 있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집행 권한 부족과 독립성 미흡 등으로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 참여도 극히 제한적이다. 정책 결정이 정부 주도의 일방적 하향식(Top-down) 방식으로 이뤄지며, 시민단체의 대안은 공식적인 정책 수립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는 기술관료 중심의 폐쇄적 구조로 이어지고, 민주적 정당성마저 훼손하고 있다.
기후 목표 달성 실패에 따른 책임 규정과 제재 장치도 부재하다. 정부·기관·기업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이에 대한 불이익이나 책임 추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고서는 이를 ‘완전한 책임 공백’으로 규정하며, 정책 이행의 실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이 같은 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핵심 과제로 ‘기후 거버넌스 혁신’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안했다.
독립 기후 감독기구 설립: 영국 기후변화위원회(CCC)와 같은 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구를 통해 과학 기반 정책 자문과 이행 점검을 수행해야 한다.
강력한 컨트롤타워 구축: 대통령 직속 또는 국무총리실 산하로 기후정책 조정 권한을 집중시켜 부처 간 조율을 이뤄야 한다.
시민 참여 제도화: 기후시민의회 등 숙의 민주주의 모델을 통해 국민의 정책 참여를 보장하고, 약자(여성·청년·농민 등)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정책 일관성과 이행 강화: 배출권거래제 개편,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 인허가 간소화, 기후예산제 도입 등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
투명성과 책임성 확보: 정책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목표 미달 시 강력한 제재와 사법적 심사를 통한 책임 추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기후 정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정부는 이제라도 무책임한 변명과 기술관료적 안일함을 버리고, 국민과 함께 기후위기 극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