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신문=황복실 기자] 한 산후관리전문업체 지사장으로 일하는 우정숙(64) 씨를 덕수궁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그의 첫인상은 직함의 무게보다는 따뜻한 미소의 소유자로 다가왔다.
의류 유통업을 하던 우 씨는 50대에 하던 일을 멈췄다. 이후 “이제는 손주들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이 딸아이의 산후조리였고, 이왕이면 전문적인 지식으로 잘하고 싶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산후관리사’를 교육하는 곳이었다.
‘산후관리사’ 민간자격 취득
산후관리사란 출산 후, 산욕기 산모의 회복과 건강을 지키면서 질병을 예방하는 일을 돕는 전문가를 말한다. 민간자격시험관리기관이 인정하는 자격을 취득하면 도움이 된다.
정부가 운영하는 민간자격정보서비스에 따르면, 현재 등록된 산후관리사 민간자격기관은 21곳에 달한다. 민간자격을 발급하는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신규 교육생의 교육 이수 시간은 60시간,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다.
산후관리사 20여 명 거느린 지사장
우정숙 씨는 당초 “산후관리사로 일하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한 주일가량의 짧은 교육과정이라 접근이 쉬웠다”며,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딸을 위해 그에 맞는 산후조리를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교육 수료 직후, 한 출산관리전문업체 대표로부터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혹시 지사를 맡아 운영할 생각이 없느냐는 내용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단호하게 거절할 수도 없어 인사치레로 생각해 보겠다고만 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5년 만에 현재 산후관리사 20여 명과 함께 일하는 사업체로 발전했다. 그의 직함은 지사장, 서울 영등포·마포·용산·중구를 담당하고 있다.
“준비하고 결정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어요. 기존에 있던 업체를 인수 했는데, 생소한 일을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이 컸어요. 게다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야 사업자등록을 낼 수 있는 체제라 자격증도 따야 했고요.”
산후관리사, 하루 10만원 안팎 수입
고민의 중심에 있을 때, 어디선가 읽은 글귀가 생각났다.
‘시간을 죽이는 데 소비하기보다는 길러 올리는 일에 소비해라.’
노후에 수익도 올리고 보람 있는 일을 준비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우정숙 씨는 서둘러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무실을 꾸렸다. 산후관리사 인력이 회사 자산이라 판단했다. 산후관리사를 채용을 위한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인터뷰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산후관리사 자격은 짧은 교육 외에는 특별한 조건이 없다. 아기를 사랑하고, 산모를 딸처럼 아끼는 마음, 깨끗한 위생, 요리를 할 수 있다면 누구나 가능하다.
산후관리사는 하루 8시간 근무 기준 9만4000원~10만5000원의 수입을 얻는다. 산모 1명 단위로 일하는 시스템이라 연속해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 틈틈이 자기 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도 있다. 입주산후관리사로도 일할 수 있는데, 짧은 시간에 일평균 16만 원가량의 많은 수입을 얻어 인기가 많다.
산모 원하는 조건 맞추는 게 관건
우정숙 씨가 산후관리전문업체 지사를 운영한 초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산후관리사와 산모와 관계 조율이었다. 산모가 원하는 조건과 가장 근접한 산후관리사와 매칭이 중요하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산모들은 신생아에 대한 전문지식이 풍부한 산후관리사를 선호하고, 산모의 건강이나 위생 문제도 중요한 기준으로 여긴다.
“관리사의 대부분 50세가 넘는 분들이에요. 평생 가사를 해오던 분들이지요. 대부분 기본기는 돼 있는 분들인데, 시간을 잘 못 지키시는 분들이 더러 있어요. 저는 시간을 잘 지키는 분을 우선 신뢰해요.”
다양한 이유로 산후관리사 길 들어서
산후관리사들이 산후 관리에 나서는 이유는 다양하다. 반드시 생계를 위한 선택은 아니다.
정모(65) 산후관리사는 남편에게만 의지해 살다 나이가 들면서 의존적인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다. 평생 독립적으로 해 본 일이 없는 정 씨는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산후관리사 교육을 받고 일할 준비를 했다.
우정숙 씨는 “경력자를 보내달라”는 산모의 간곡한 부탁이 있던 날, 그에 맞는 산후관리사가 없어 고민하다 정 씨를 떠올렸다. 첫 만남 때 약속 시간 30분 전 도착했던 성실함이라면 조금 서툴러도 잘 해낼 것 같았다.
더구나 정 씨는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아기 돌보는 일이고, 아기가 너무 예쁘다”고 했다. 우정숙 씨의 짐작은 빗나가지 않았다. 정씨는 산모의 정성 어린 후기에 만족도 90%란 평을 받았다. 정 씨는 현재 산모들에게 인기 있는 산후관리사 중 한 명이다. 산후관리사란 직업을 통해 드디어 정 씨의 독립이 시작됐다.
본인 장점 살리면 산모 고객 만족도 높아
손모(60대) 산후관리사는 또 다른 사례다.
우정숙 씨는 “손 관리사를 처음 만났을 때는 깜짝 놀랐다”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흠잡을 데 없는 패션 감각으로 엄청 교양있어 보였다”고 했다.
내심 ‘저런 분이 산후관리사를 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여행과 골프를 즐기면서 자신을 아끼던 성격이었다. 그의 딸이 “돈 벌면 안 되느냐”고 불평했고, 정신이 번쩍 났단다. 그동안 자신의 처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우정숙 씨는 “손 씨도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나타났다”며, “자신을 그 정도로 가꾼다면 다른 일도 성의있게 잘 해낼 것이라 믿고 산모와 연결했다”고 했다. 손 씨도 정 씨처럼 만족도가 높았다.
산후관리사를 선택하는 이유는 정말 다양하다. 자식 잃은 슬픔을 아기와 산모를 돌보며 극복하는 경우도 있다. 몸조리가 중요한 산모를 위해 남다른 요리 솜씨를 뽐내며 즐기는 등 본인이 잘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산모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위생·신생아 전문지식 필수요소
흔히 ‘돈 받고 일하려면 프로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산후관리사도 그렇다. 대충 시간만 보내고 돈 받으려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한다.
우정숙 씨도 처음 산후관리사에 도전하면서 산모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위생 문제를 비롯해 신생아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평범하지 않고 까탈스러운 산모도 있는데, 산모의 성격을 누그러뜨리면서 잘 조율하는 것도 지사장의 몫이다.
가끔 신체장애가 있는 아기들을 의뢰받기도 한다. 그런 가정에는 장애에 대한 편견 없이 아기를 돌봐 줄 산후관리사를 엄선해 보낸다.
우정숙 씨는 지사장으로서 산후관리사들의 업무가 끝나는 대로 반드시 모니터링한다. 산모에게 “너무 잘 지냈다”는 후기가 올라올 때면 수익보다 보람이 더 크다. 개선점을 지적 받았을 때는 꼼꼼히 메모해 반영한다.
돈 좇다 이제는 긍지와 보람이 우선
우정숙 씨는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계속 걸려 오는 전화에 응대했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웃었고, 목소리 톤은 한결같았다. 그는 “방금 한 산후관리사와 통화했다”며, “동년배이고 한 식구 같아 대화가 잘된다”며 웃었다.
그는 본인이 ‘걸어 다니는 사무실‘이란다. 예전엔 돈을 좇아 일했다면, 지금은 보람이 먼저란다.
우정숙 씨는 “취미생활, 운동, 여행 거의 다 해봤지만, 끝은 허무하더라고요. 마치 인생을 낭비하는 것 같았어요. 저는 지금의 일에 긍지와 보람이 커요. 이렇게 내 볼일 보면서 딸 같은 산모를 살피고, 관리사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고요. 산모나 산후관리사에게 고맙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양쪽 모두에게 작은 선물과 커피 쿠폰도 주고받아요.”
우정숙 씨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얼굴로 인터뷰를 진행한 뒤 또 누군가와 살갑게 전화 통화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