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치서 외면당하는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사회는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흑백 TV가 컬러로 바뀌고, 삐삐가 스마트폰으로 대체되는 기술의 격변 속에서도 실버 세대 독자 여러분께서는 언제나 중심축으로서 자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기후 변화’라는 격랑은 단순한 기술 혁신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는 우리 삶의 터전 자체가 돌이킬 수 없이 변할 수 있다는 준엄한 경고이자, 우리가 지금껏 누려온 문명이 얼마나 위태로운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일깨워줍니다.

최근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6차 평가 보고서는 이러한 경고의 목소리를 한층 더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보고서는 “인간의 영향이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온난화시키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unequivocal)”라고 단언하며, 이전 보고서들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표현했던 것과 달리, 이를 더 이상 논쟁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사실’로 확정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과학적 주장을 넘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명확히 직시하라는 메시지와 같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바다를 신성화시키는 주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1970년대 이래로 전 세계 해수면 온도가 상승한 것 역시 인간의 영향일 가능성이 극도로 높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문명의 이기들이 결국 자연의 근본적인 성질까지 바꾸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해수면 상승, 빙하 후퇴, 북극 해빙의 감소, 그리고 극단적인 기상 현상의 증가는 모두 인간의 활동이 초래한 결과임을 과학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보고서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 불리는 개념의 등장입니다. 이는 어떤 시스템이 서서히 변하다가 특정 지점을 넘어서면, 최근 과거 변화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급격히 재편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컵에 물을 따르다가 수위가 컵의 가장자리를 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것처럼 말이죠. IPCC 보고서는 이러한 티핑포인트의 가능성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경고하며, 대서양의 거대한 해류 순환 시스템(AMOC)이 약화되거나 그린란드 및 서남극의 빙상이 완전히 녹아내라는 시나리오를 제시합니다. 이는 단순히 환경 문제를 넘어,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경고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떤 가요? 곧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력 주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기후 위기 관련 정책과 비전은 이러한 과학적 절박함에 턱없이 못 미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를 단편적인 환경 문제로 치부하거나,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귀찮은 규제쯤으로 여기는 듯한 인식이 팽배합니다. 당장의 표심을 얻기 위한 개발 공약과 단기적인 경제 부양책만 난무할 뿐, 인류 문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이 거대한 위기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담대한 비전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입니다.

‘기후 위기는 과장되었다’거나 ‘우리나라의 책임은 크지 않다’는 식의 안일한 태도는 과학적 사실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며, 미래 세대에 대한 직무유기입니다. IPCC 보고서가 수많은 과학자의 피와 땀으로 축적한 데이터를 근거로 ‘인간의 책임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선언한 지금, 정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와 다름없습니다.

물론 보고서는 “우리의 상황은 절망적이지 않다”며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을 통해 저온난화 시나리오로 향한다면 티핑포인트를 피할 가능성을 “정말 최소한으로 억제될 수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즉, 지금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평생을 국가의 발전을 위해 헌신 해오신 실버 세대에게 정치란 미래를 내다보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닌, 후손들이 살아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리더의 책무일 것입니다.

다가오는 선거에서 우리는 후보자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IPCC 보고서를 제대로 읽어보기는 했는지, ‘티핑포인트’와 ‘비가역적 변화’라는 단어의 무게를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자녀와 손주들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줄 것인지 말입니다. 과학의 냉엄한 경고를 무시하는 지도자는 국가의 미래를 맡길 자격이 없습니다. 현명한 유권자의 눈으로 옥석을 가려내야 할 때입니다.

서일석 기자
서일석 기자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시민 교육과 국가와 지방 정부의 미세먼지 저감,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전환 정책의 계획 이행 결과 와 평가 정보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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