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서비스, 잘 만들면 끝?…소유보다 즐기는 자체 중시하는 플레이슈머·펀슈머

[시니어신문=김지선 기자] 밀가루 브랜드를 수제맥주에 달고, 구두약 브랜드는 초콜릿으로 재탄생한다. 심지어 동일한 디자인으로 유성매직은 탄산음료가 됐고, 딱풀은 사탕으로 나왔다. 모두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소비 경향인 ‘재미’(fun)를 추구하는 고객들을 노린 변신이다. 이러한 현상은 건강, 음식, 패션, 집, 그리고 직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소비에서 재미를 매우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플레이슈머’(Playsumer) ‘펀슈머’(Funsumer)들이 급증하고 있다.

‘놀이문화’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고, 다양한 방법들이 IT 기술의 발전을 통해 가능해지면서 앞으로 플레이슈머와 펀슈머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플레이슈머 또는 펀슈머는 음식도 단순한 맛이 아니라 요리의 재미를 즐기고, 운동도 건강이 아니라 즐기는 재미를 중시한다.

“사회 복잡할수록 재미 추구”

마케팅 분야의 대가인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소비자는 재미를 추구한다”고 강조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소비자들도 미디어와 IT기기 발전에 힘입어 기본적인 욕구를 줄이더라도 재미를 추구하는 경향도 발생하고 있다.

예컨대, 인도에서는 월급이 10만원도 안 되는 가사도우미가 옷이나 먹는 것에 쓸 돈을 아껴 50만원짜리 스마트폰을 구입하고 쉬는 시간마다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 중국 도심의 일부 노동자들은 춘절에 고향에 가는 대신 지인들끼리 모여 파티를 즐긴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 당장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소비하는 인구가 점차 증가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놀이 혹은 ‘펀’(fun)를 원하는 소비자, ‘플레이슈머’(Playsumer) ‘펀슈머’(Funsumer)가 등장한 것이다.

플레이슈머·펀슈머, 그들은 누구인가?

이들의 첫째 특징은 소유보다 사용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구매결정 과정에서 ‘내가 이것을 갖고 어떻게 놀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한다.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 본연의 기능이 필요해 구매하거나 무작정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서 구매하는 소비자들과 구별된다. 스마트워치를 단순한 편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깅이나 자전거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구매하는 사람들이다.

둘째로, 이들은 기존 관습이나 고정관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춘절에 고향을 찾는 대신 파티를 즐기는 중국 소비자들이나, ‘프라다’(Prada)의 패러디 브랜드인 ‘프라우드’(Proud) 로고가 크게 박힌 옷을 입고 다니는 소비자들이 대표적인 예다. 현실의 재미와 상충하는 과거의 관습이나 틀에 박힌 형식, 브랜드의 전통이나 상징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셋째, 구매 과정 자체에서도 재미를 원한다. 최근 온라인 쇼핑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과거 단순히 깔끔한 매장에 제품을 보기 좋게 진열하는 매장에서 이제는 직접 체험하고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의류 브랜드 매장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클럽에 온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어두운 조명에 비트가 강한 음악을 크게 틀어 갑자기 심장의 바운스가 강하게 느껴진다. 단순히 옷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며 클럽에 온 느낌으로 쇼핑한다. ‘애플 스토어’도 플레이슈머와 펀슈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장소다. 데스크마다 마련된 애플 기기들을 갖고 인터넷과 음악을 즐기다가 필요한 제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넷째, 이들은 직접적으로 의도하지 않지만 주변 동료(Peer)그룹에 많은 영향을 준다. 트렌디한 소비자들이 SNS 전체 공개를 통해 의도적으로 본인의 쇼핑 리스트를 사진으로 자랑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구매한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해 구매 과정부터 실제 사용 중 느꼈던 다양한 재미들을 비슷한 취향의 그룹 내에서 공유함으로써 더욱 전문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일상에 확산되는 ‘펀’(fun) 문화

플레이슈머·펀슈머의 증가는 건강, 음식, 패션, 집, 그리고 직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운동은 항상 중요한 관심사다. 하지만 단순한 조깅, 자전거 타기, 헬스장에서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들은 의지가 강한 소수에 불과하다. 이른바 ‘몸짱’이 되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너무 긴 시간의 고통을 참아야 하고 재미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운동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면서 동시에 건강도 챙길 수 있는 다양한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동작을 응용해 그룹에서 고강도 운동을 하는 ‘크로스 핏’(Cross Fit), 단체로 음악을 크게 틀고 강사의 구령에 맞춰 실내 자전거를 타는 ‘스피닝’(Spinning), 댄스와 에어로빅의 결합인 ‘줌바’(Zumba), 배드민턴에 스쿼시와 테니스의 장점을 섞어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스피드민턴’(Speedminton) 등은 이미 많이 알려진 플레이슈머·펀슈머들의 운동이다.

이들은 음식에 있어서도 단순히 건강에 좋은 웰빙식을 먹는다거나, TV에서 소개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보다 만드는 과정의 재미를 추구한다. 그래서 최근 방송에서는 먹는 행위 자체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들이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요리 프로그램들은 시간제한과 대결을 통해 긴장감을 주는 재미, 요리를 잘 못하는 호스트가 어설프게 음식을 만들지만 결국 완성하는 재미, 시골 마을에서 솥과 아궁이를 이용해 ‘시골 스타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편안하게 보여주는 재미를 선사한다.

소비자 세분화 방식 변화 필요

‘유희의 인간’(Homo Ludens)이 가진 본성은 다른 기초적인 욕구와 더불어 항상 존재해 왔다. 더욱이 최근 고도로 발달된 미디어와 IT기술은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재미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참여하게 만들어 확산시킨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젊은세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한 자동차 전문 TV프로그램이 주최한 드래그 레이스에 참가한 50대 중년 남성은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자신만을 위해 고가의 스포츠카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아내의 응원을 받으며 출발선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그의 얼굴에서는 긴장감과 더불어 너무나도 즐거운 표정이 엿보였다. 단지 등산의 목적을 넘어선 다양한 이유로 화려한 아웃도어 패션의 주요 고객으로 자리 잡은 시니어도 좋은 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소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무료 게임 앱, 음식 페스티벌 이벤트, 저렴한 브랜드 쇼핑, 게스트하우스 숙박 등 돈이 많이 들지 않는 다양한 놀거리가 늘어나고 있다. 결국 노는 것에 대한 더욱 긍정적인 시각과 실제 다양한 방법들이 IT 기술을 통해 빠르게 생성, 전달, 확산되면서 앞으로 플레이슈머와 펀슈머들의 증가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입장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처럼 나이, 성별, 소득 등을 이용한 인구통계적인 소비자 세분화로는 증가하는 플레이슈머와 펀슈머를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오히려 나이와 인구가 아니라 놀이 형태를 이용한 세분화로 소비자를 분류할 수 있다.

플레이슈머·펀슈머 접근을 위한 창의성

스포츠를 좋아하는 플레이슈머와 펀슈머를 위해 매장에서 옷, 신발, 액세서리 등을 신어보고 모션센서를 이용한 장비에서 가상으로 해당 스포츠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어떨까. 테니스 용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에게 실제 옷, 신발, 팔목보호대 등을 착용하고 가상 테니스 코트에서 게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팔을 휘두르고 앞뒤 좌우로 움직여 보면 옷의 착용감이나 신발의 쿠션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미도 느낄 수 있어 매장에 더욱 자주 들리고 추가 구매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호기심이 많은 플레이슈머를 위해 레스토랑에서 자신이 선택한 음식이 요리되는 과정을 테이블 아래 스마트패드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요리가 끝나면 친절하게 레시피를 스마트패드로 전송하고, 이를 곧바로 나의 SNS계정으로 전송하는 재미를 제공한다면 그 음식의 맛은 더욱 좋게 느껴질 것이다.

플레이슈머나 펀슈머는 역동적이냐, 정적이냐를 기준으로 한 놀이성격, 혼자서 즐기는가 아니면 단체로 즐기는가를 기준으로 한 놀이방법,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즐기는가를 기준으로 한 놀이주체 등으로 이해하고 구분지을 수 있다.

플레이슈머와 펀슈머 세분화를 통해 소비자들의 숨겨진 욕구 발굴과 더불어 숨겨진 펀(Fun) 욕구를 캐보는 것도 예상치 못한 히트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창조적인 접근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움말=LG경제연구원 이진상 책임연구원

장한형 기자
장한형 기자
2005년부터 시니어 전문기자, 편집국장을 거쳐 현재 24개 지역시니어신문 발행인입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KBS라디오 '출발멋진인생'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시니어 관련 주요 이슈를 풀어 드리고 있습니다. 최근엔 시니어TV '시니어 이슈 플러스' 진행을 맡아 국내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제작했습니다. 지금은 지역시니어신문과 함께 '경험거래소'를 운영하며 시니어들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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