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한산초등학교 죽도분교에 자리한 ‘재기중소기업개발원’ 전경.

[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재기중소기업개발원’. 실패한 기업인들을 불러모아 자아를 일깨우고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워 다시 시작하도록 돕는 곳이다. ‘죽도연수원’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곳. 경남 통영항여객선터미널에서 남동쪽 뱃길 4km 떨어진 통영시 한산면 매죽리 죽도(竹島). 해안선 길이 3km에 불과한 이 작은 섬에 강렬한 희망이 샘솟고 있다. 그 진원지는 재단법인 재기중소기업개발원. 사람들이 ‘죽도연수원’이라 부르는 곳이다. 많은 중소기업들이 허약한 재무구조와 경영 미숙, 연대보증으로 얽히고설킨 자금줄에 발목 잡혀 한 순간 삐끗하면 나락으로 곤두박질한다.

특히 연대보증이란 패악 탓에 경영자 본인은 물론, 가족과 지인들도 한순간에 죄인 아니면 사기꾼으로 낙인찍혀 야반도주하기 십상이다. 죽도연수원은 소자본과 열정만으로 창업했다 실패한 중소기업인들에게 재기의지와 사업의욕을 고취시키고, 재도전 동기를 부여하는 재활교육을 한다.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중견 가스전문기업 ‘MS corp’(엠에스 코프) 전원태(67) 회장의 인생역정이 녹아있는 곳이 바로 죽도연수원이다.

죽도연수원이 자리한 통영 앞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에 빠져드는 교육생들.

설립자 전원태 회장의 실패·좌절

설립자 전원태 회장.

전원태 회장의 집안은 대대로 부산에서 터전을 지키며 꽤나 잘 살았다. 그런데, 그가 베트남전에서 돌아와 보니 모친이 채소 행상에 나설 정도로 몰락해 있었다. 당시 마음을 달래려 처음 찾은 곳이 죽도였다. 그리고는 스물다섯 살 때인 1973년, 부친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로 아세틸렌가스 공장을 차렸다. 처음에는 그럴 듯했다. 종업원이 16명이나 됐다. 그런데 1976년, 공장 폭발사고가 터졌다. 직원 2명이 숨졌고, 절망의 늪에 빠졌다.

하지만 전 회장은 베트남전쟁에서 죽은 전우들을 떠올리며 ‘죽을 용기’를 냈다. 다시 일어섰다. 공장에서만 5년을 살았다. 성공하는가 싶었던 사업은, 그러나 제2차 오일쇼크(1978~79년) 여파로 1983년 부도가 났다.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위로와 도움은커녕, “다음에 보자”며 싸늘히 외면했다. 크게 상심한 그는 죽을 각오를 했다. 죽도 앞에 자리한 대덕도란 무인도에 들어가 생쌀을 씹어 먹으며 40여일을 홀로 지냈다. 그렇게 2주일이 지난 뒤 하루 종일 눈물이 흘렀다. 참회하며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내가 지금 왜 여기에 와 있는가?’ 사업실패는 ‘남 탓이 아니라 내 잘못’이었다. 대학노트 3권을 내리 쓴 반성문의 결론이었다.

교육은 맨발로 모닥불 위를 걷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두려움을 이기고 다시 도전하기 위한 의식이다.

사재 20억원 내놔 연수원 설립

전원태 회장이 이끄는 ‘MS corp’는 현재 9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연매출 1000억원이 훌쩍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에 앞선 2011년 8월, 전원태 회장은 사재 20억원을 들여 죽도에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을 세운다. 눈물을 머금고 참회하며 진정한 ‘나’를 깨닫고 맨 주먹으로 다시 일어선 자신의 경험을 실패한 기업인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고 삶의 여유를 호사롭게 누렸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보람 있는 인생을 살자는 또 다른 깨달음의 결과가 죽도연수원이다. 연간 3억원 이상의 운영비도 그가 댄다. 도움을 주겠다는 곳은 많았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죽도연수원 가파른 언덕 위 정문 앞에 의미심장한 팻말을 달았다.

‘虛密淸圓’(허밀청원), ‘비워야 맑은 마음을 채운다’는 뜻이다. 실패한 기업인들이 썩어 문드러진 마음을 싹 비워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의지와 희망, 용기를 담길 바라는 전원태 회장의 소망이다. 그가 최근 새로운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국립공원 안에 자리한 죽도연수원은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 인근 섬에 새로운 연수원을 세우려 한다. 중소기업청과는 ‘재창업사관학교’ 설립도 협의하고 있다. 전원태 회장은 “우리 세대는 먹고 살기 힘들었다. 그래서 돈만 벌만 그만이었지. 자아가 없었고, 진정한 ‘나’는 알지 못했어. 그래서 세상이 어지럽다. 돈만 쫓지 말고, 좋아하는 일을 죽는 날까지 해야 행복할 수 있어”라고 강조한다.

진정한 재기, 올곧은 자아확립

죽도연수원에 제 발로 찾아온 교육생들은 대부분 사업실패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위태롭게 내몰렸던 ‘사장님’들이다. 그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부여잡는 동아줄이 죽도연수원이다. 실패한 사장님 수백 명이 죽도연수원을 거쳐 나갔다. 이들 대부분이 재창업에 성공, 어엿한 기업인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재기에 성공했다’는 표현으로 그친다면 전원태 회장과 교육수료생들이 불같이 화를 낼 것이 분명하다. 이들에게 ‘재기’는 뭇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회사를 다시 세우고 돈을 버는 성공’이 결코 아니다. 진정한 재기란 ‘자신의 가치관을 올바로 세우고, 잃었던 용기와 자신감을 되찾는 것’이다. 사업실패를 빌미로 이혼한 부부가 죽도연수원 교육수료 후 재결합했다. ‘허밀청원 사람들’은 이것만으로도 재기에 성공한 것으로 여긴다. 자신과 삶에 대한 태도를 올곧게 재정립하는 것, 이것이 죽도에서 강조되는 ‘재기’다. 그 재기의 계기를 스스로 터득하고 깨닫는 것, 그것이 죽도연수원의 존재이유다.

교육생들이 머무는 텐트. 비가오나 눈이오나 새벽 5시 기상이다.

‘사업실패, 남 아닌 내 탓이오’

죽도연수원은 사업에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받아들이진 않는다. ‘누가 더 절박한가’를 먼저 따져본다. 알음알음 소문이 나면서 경쟁률이 3~4대1이나 된다. 들어온 사람보다 못 들어온 사람이 더 많으니, 교육은 허투루 진행되지 않는다. 첫날 하루 빼고는 연수원 뒷산 꼭대기에 개별 텐트를 치고 잠을 잔다. 거센 비바람이 부는 날도 예외는 없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체조를 하고, 명상을 하며, 하루 세 차례 산길을 걸으며 ‘에코힐링’을 한다. 섬에서 먹을 작물도 직접 가꾼다. 육지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내로라는 강사들의 재능기부 교육과 강의를 듣고, 일기를 작성하며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주된 일과다. 다만, 저녁식사는 없다. 마음을 비우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위함이다. 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드니, 수면시간은 고작 4~5시간에 불과하다. 1주차엔 자기반성과 성찰, 2~3주차는 실패원인 분석, 4주차는 주로 실패를 경험한 기업가와 창업전문가의 강의가 진행된다. 서너 기수에 1명씩은 포기하는 교육생이 나온다. 약속된 4주를 잘 참아낸 교육생들은 깨닫는다. ‘사업실패는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이다!’